프톨레마이오스 4세 필로파토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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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File:218BCMAPMEDITERRANEAN.jpg|right|thumb|기원전 218년의 [[지중해]]]]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치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절정기를 맞이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4세의 무렵부터 국력은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여 방탕한 생활을 보냈으며, 그에 따라 궁정의 부패도 심했다고 한다. 즉위 후, 간신 [[소시비오스]]와 [[아가토클레스 (이집트)|아가토클레스]]의 중상모략으로 어머니 [[베레니케 2세]]와 동생인 [[마기]](제사장)인 동생을 살해했다. 그리고 아가토클레스의 여동생 [[아가토클레아]]를 연인으로 삼고 측근들의 영향력을 강하게 하였다.
 
기원전 [[219년]]부터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와의 제4차 시리아 전쟁이 2년동안 벌어졌다. 전쟁은 코이레·시리아([[:en:Coele-Syria|Coele-Syria]]) 주변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라피아([[:en:Battle of Raphia|Raphia]])의 싸움에서 이집트 원주민의 힘을 얻은 이집트군이 승리해 코이레·시리아 주변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라피아의 싸움에서 원주민들이 승리에 공헌한 일로 인해, 지배층([[마케도니아인]]과 [[그리스인]])은 원주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전쟁 이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들에게의 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