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0번째 줄:
|웹사이트=
}}
'''강민첨'''(姜民瞻, [[963년]] [[11월 29일]]~[[1021년]] [[11월 12일]])은 진주 강씨 [[진주 강씨 (강이식)|은렬공파]]의 파시조이다. [[고려]]시대 거란의 3차 침입 시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부원수가 되어 출전하여 [[귀주대첩]]을 이끌었다.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현종 때에는 여진의 침입을 막았으며, [[강감찬]] 장군의 부장이 되어 흥화진에서 [[소손녕]](蕭遜寧)의 거란군을 격파하였다. 이 공으로 지중추 부사·병부상서에 올랐다. 본래 선비 출신으로 무예에는 능하지 못하였으나 의지가 강하여 거듭 전공을 세웠다.
 
==생애==
31번째 줄:
* [[1012년]] 5월 현종 3년에 [[안찰사]]가 되어 경북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을 문연, 이인택, 조자기 등과 함께 날카로운 못이 돋아난 일종의 철갑선인 과선(戈船)으로 격퇴하였다.
* 1016년에는 내사사인(內史舍人)이 되었고, 1017년에는 태복경(太僕卿)이 되었다.
* [[1018년]] 12월 현종 9년 거란이 10만을 군사를 이끌고 재침입하자, 대장군(大將軍) 재직 중에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적장 [[소배압]](蕭排押)을 자산(慈山)에서 대파하였다. 상원수 [[강감찬]]과 함께 [[귀주대첩]]을 일구었다.
* 1019년 은청흥록대부 [[응양상장군]](鷹揚上將軍) 상주국(上柱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삼백호에 봉해지고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됨. 12월 추성치리익대공신(推誠致理翊戴功臣)이 됨.
* 1020년 3월 [[병부상서]] 겸 [[태자태사]], 현릉 개장의 공으로 금자흥록대부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