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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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대무신왕]]의
왕위에 오른 [[44년]] 음력 11월에 대사면령을 내렸으며, [[45년]] 음력 3월에는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었다. 음력 5월에는 나라 동쪽에서 홍수가 나서 백성들이 굶주리자 창고를 열어 진휼했다. [[47년]]에 사냥을 나간 민중왕은 민중원(閔中原)에 이르러 석굴을 발견하고 그곳에 자신을 장사지낼 것을 명하였다. 음력 10월에는 잠지락부(蠶支落部)의 대가(大家)인 [[대승 (인물)|대승]](戴升) 등 1만여 가(家)가 [[한나라|한]](漢)의 [[낙랑]]으로 투항하였다. [[48년]]에 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석굴에 장사지내고 지명을 따서 왕명을 민중왕(閔中王)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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