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라키티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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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라키티치''' ({{llang|hr|Ivan Rakitić}}, [[1988년]] [[3월 10일]], 뫼흘린) 는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이다. 현재 [[1독일 분데스리가]]의 [[FC 샬케 04]] 소속이며,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다.
 
뫼흘린에서 태어난 라키티치는 현재 뛰고 있는 [[FC 샬케 04]]로 부터의 평판을 얻기 이전에 [[스위스 슈퍼리그]]의 명문 클럽인 [[FC 바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 두 시즌간 활약하였다. 비록 스위스 유소년 축구의 산물이지만 그는 자신의 국가대표팀으로 그의 모국이라 할 수있는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의 대표팀]]을 택하였다.
 
==생애==
이반 라키티치는 [[크로아티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크로아티아]]서 내전이 일어나기 이전에 [[스위스]]로 이주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루카와 그의 가족은 [[크로아티아]] 시키레프치에[[시키레프치]]에 근본을 두고 있는 반면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가족은 [[보스니아]] 제프체에[[제프체]]에 근본을 둔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인이다. 라키티치는 그의 어린시절과 유소년 경력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와 형 또한 축구선수였고축구 선수였고,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그가 초등학교 교육을 마쳤음에도 이 같은 목표에 강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다지 놀랍지만은 않은 사실임을 알수있다알 수 있다. 그 뒤로 그는 그의 가족들의 격려하에 운동 선수로서의 경력을 꾸려나갈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의 가족이 그가 작은 리그에서 더 정규적으로 뛸 수 있도록 [[바젤]]에 머물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이 16세때 그는 유럽 최고의 스카우터들로 부터 젊은 잠재성을 각인 받게된다받게되었다.
 
==클럽 경력==
===FC 바젤===
유스팀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후, 라키티치는 [[2005년]] [[9월 29일]]에 [[NK 쉬로키 브리예그와의브리예그]]와의 [[UEFA 컵]] 원정 경기에서 [[FC 바젤]]에서의 데뷔 경기를 가졌고, [[2006년]] [[4월 15일]] [[뇌샤텔 크사마와의크사마]]와의 원정 경기에서 첫 [[스위스 슈퍼리그]] 출장을 기록했다. 비록 이 두경기가 그의 [[FC 바젤]]에서의 첫시즌의 전부일 뿐이었지만 그의 두번째 시즌에서는 [[스위스 슈퍼리그]] 33경기 출전에 11골을 기록해 팀을 위해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또한 이 시즌 [[UEFA 컵]]에서 9경기를 출장해 그는 2006-2007 [[스위스 슈퍼리그]] 최우수 영 플레이어 상과 함께 FC 세인트 갈렌을 상대로 넣은 인상적인 골로 인하여 '올해의 골' 상을 수상하였다.
 
===FC 샬케 04===
어린 나이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뒤로, 라키티치는 자신의 유망한 능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유럽 빅클럽들로 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이러한 결과로, [[2007년]] [[6월 22일]] 그는 결국 [[1 분데스리가|독일 분데스리가]]의 [[FC 샬케 04]]와 계약을 맺었다. 그는 클럽의 감독인 [[미르코 슬롬카로슬롬카]]로 부터 그가 그해 [[갈라타사라이 SK]]로 떠난 [[브라질]] 미드필더 [[링콘린코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졌다.
 
그는 [[2007년]] [[7월 21일]], [[카를스루에 SC]]와의 [[리가포칼]] 경기에서 [[FC 샬케 04|FC 샬케]] 선수로서의 데뷔전을 가졌다, 그리고 결국 [[FC 샬케 04|샬케]]가04가 준우승으로 마친 이 대회의 나머지 두 경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2007년]] [[8월 5일]], [[SC 에인라흐트 트리어 05와의05]]와의 [[DFB-포칼]] 1회전 원정경기에서 라키티치는 [[FC 샬케 04|샬케]] 이적 후 데뷔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서 [[FC 샬케 04|샬케]]는04는 9-0 승리를 기록했다.
 
[[2007년]] [[8월 10일]], [[1 분데스리가|분데스리가]]의 새로운 시즌이 디펜딩 챔피언 [[VfB 슈투트가르트]]와 [[FC 샬케 04]]와의 경기로 개막했고, 라키티치는 후반 교체로 들어온지 7분만에 그의 첫 [[1 분데스리가|분데스리가]] 데뷔골을 신고했다. 팀은 [[VfB 슈투트가르트|슈투트가르트]]와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2007년]] [[9월 15일]], 그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서 팀의 유일한 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어 가까스로 인상을 주었다. 3일 후, 라키티치는 [[발렌시아 CF]]에게 홈에서 1-0으로 패배한 경기에서 [[챔피언스UEFA 리그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07-08]]에서 7경기를 출장했고, [[첼시 FC]]와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팀의 미드필드에서 강하고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그와 팀 동료 [[믈라덴 크르스타이치는크르스타이치]]는 밤늦게 나이트파티를 하고 다음날 훈련을 불참한 죄로 [[로젠보리로센보르그 BK]]와의 경기서 일시적으로 제외되기도 하였다. 그의 팀이 [[FC 포르투]]와의 승부차기에서 승리하고 최초로 8강에 오르는데 공헌하였으나, 라키티치는 훈련중 발목 부상으로 인해 다음 상대인 [[FC 바르셀로나]]와의 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FC 샬케 04|샬케]]는04는 그가 없이 토너먼트에서 탈락했고 그는 몇달간을 결장 해야했다.
 
부상으로부터 돌아온 즉후, 라키티치는 [[VfL 보훔]]을 상대로 1골과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고 최고의 폼을 되찾는데 성공하였고, [[FC 샬케 04|샬케]]는 최소 리그 3위를 확정지으며 더불어 다음시즌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다음경기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에서 라키티치는 믈라덴 크르스타이치의 그 경기서 유일한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긍정적인 시즌 마무리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의 첫 [[분데스리가]] 시즌을 29경기 출장 3골 10어시스트로 마쳤다.
 
이어진 시즌에서 라키티치는 왼쪽 공격수로 보직을 바꾸고 개막전인 [[하노버 96]]을 상대로 2어시스트를 기록해 3-0 승리를 이끌어내 환상적인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2년차 징크스가 발동한 탓인지 이후 내리 10경기동안 아무 스탯도 찍지 못한채, 전반기에는 평균 3.9의 저조한 평점을 기록한다. 야심차게 영입한 엥헬라르가[[올란도 엥헬라르]]가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임에 따라 전반기 끝자락에 중앙 미드필더에 몇번 출전하였지만 그다지 활약은 하지 못한채 11경기 0골 3어시스트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2009년]] [[1월 27일]] [[DFB-포칼]] FC 카를 차이스 예나와의 경기에선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에 공헌해 화려한 후반기 부활을 예고하기도 하였다. 그 뒤로 [[FC 쾰른]], [[카를스루에 SC]], [[바이어 레버쿠젠]] 그리고 [[TSG 1899 호펜하임]]을 상대로 어시스트를 기록한채 결국 2008-09 시즌을 1골 7어시스트(컵 포함 2골 8어시스트)로 끝마쳤다.
 
2009-10 시즌, [[FC 샬케 04]]의 새 감독으로 '분데스 우승청부사'라 불리우는 [[펠릭스 마가트가마가트]]가 부임하였고, 라키티치는 이 불호랑이 감독 하에 최고의 시즌을 구가한다. [[2010년]] [[2월 26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일명 '루르 더비'전서 기록한 멋진 감아차기 골을 필두로 이어지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에서도 골을 기록해 2경기 연속골을 달성했고 [[2010년]] [[4월 17일]]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전에서는 입단 최초로 멀티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최종 스탯 7골 2어시스트로 [[FC 샬케 04]]가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치는데 공헌한 라키티치는 더욱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기대감을 한층 드높였다.
 
===클럽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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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경력==
비록 그가 스위스 U-17, U-19 그리고 U-21 대표팀을 거쳤지만, 라키티치는 [[슬라벤 빌리치]] 감독에게 전화해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 성인 대표팀]]에서 뛸것임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그의 출생국가인 스위스 축구 협회로 부터 강한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그와 가족들은 상당한 위협을 받아왔다,. 그리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심지어 스위스 시민권 조차도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2007년]] [[9월 8일]] [[에스토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스토니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경기에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 대표팀]]선수로서의 첫 데뷔전을 가졌고, 교체로 투입되면서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어지는 예선 경기중 [[2007년]] [[9월 12일]] [[안도라 축구 국가대표팀|안도라]]를 상대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가 6-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라키티치는 단 두경기째 출전만에 대표팀에서의 첫골을 기록하였다. 그는 5경기의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출장을 기록하며 [[2007년]]을 마무리했고 그 중 4경기는 성공적인 [[UEFA 유로 2008 예선]]경기였다.
 
[[2008년]] [[5월]]초, 그는 [[유로 2008]]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그는 두번째로 어린 선수였다. 그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과의 경기서 선발 선수로 첫 출장하였고 게다가 골포스트를 맞는 슛을 날려 팀동료 [[이비차 올리치]]의 2번째 골을 도우며 2-1로 승리한 그 경기에 공헌하였다.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터키]]와의 16강 경기에서도 공격적인 임무를 맡으며 활약했음에도, 라키티치는 이어지는 승부차기에서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크로아티아]]의 세개세 개의 실축 중 하나를 책임지며기록하며 터키의 극적인 승리를 지켜볼 수밖에수 밖에 없었다.
 
[[2009년]]에는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루마니아]]와 [[벨라루스 축구 국가대표팀|벨라루스]]를 상대로 각각 한골씩을 기록했으며, [[2010년]]에는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웨일스]]를 상대한 경기에서 멋진 선제골을 넣기도 하였다.
 
===국가대표 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