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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황실을 선조로 둔다는 것은 고구려계승의식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는 고려중기 서경의 난을 진압한 신라계가 신라가 삼국통일당시 당나라와의 연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숙종과 동시대 인물인 [[이정기]]의 아들 이납이 신라로 건너가 의조의 어머니와 동침한 뒤 작제건을 낳은 사실을 [[편년강목]]의 저자에게 이정기와 이납부자의 성씨가 당숙종과 같다는 점을 들어 작제건의 생부를 당숙종으로 바꾸었을바꾸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이런 이유로 [[개성왕씨]]는 당숙종이 아닌 동시대의 인물인 이정기의 아들인 이납의 자손일 가능성이 있다있음에도 신라계의 고구려계에 대한 반감으로 개성왕씨는 당나라 황실의 후예로 바뀌어졌고 이것이 뒷날 무신정변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 무신정변의 주도세력은 경주세력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구려계가 근거하는 패서(浿西)지방출신인 정중부가 경주(慶州)출신인 김돈중에게 수염이 태워진 사실은 서경(실제로는 패서)출신 관료와 경주출신 관료의 지역감정이 당시에는 심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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