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넘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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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과 현명한 조율의 결합으로 말버러 공작의 진짜 목표를 친구로부터 적에 이르는 모든 이들로부터 숨길 수 있었고, 말버러 공작은 이것으로 인해 [[네덜란드|저지대 국가]]에서 도나우까지 5주간 방해받지 않은 채 250마일(400km)를 진군할 수 있었다. [[도나우 강]]에 위치한 [[도나우뵈르트]](Donauwörth)를 확보한 후에, 영국의 공작은 [[탈라르 공작 카미유 도스튄|탈라르]](Tallard) 원수가 [[슈바르츠발트]](검은 숲)(Schwarzwald)을 넘어 구원군을 이끌고 도착하기 전에 선제후와 마르생의 군대와 교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의 사령관들은 그들의 병력이 충분해질 때까지 싸우는 것을 꺼려했고, 말버러 공작은 군대를 끌어내기 위해 바이에른에 대하여 약탈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증명되었지만, 탈라르가 선제후의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도착했을 때 [[사보이 공작 외젠|외젠 공작]](Prince Eugene) 역시 동맹군을 지원하기 위해 도착했고, 양군은 결국 [[블렌하임]](Blindheim)의 작은 마을 근처에 있는 도나우 강의 강둑에서 만나게 되었다.
 
블렌하임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즁요한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압도적인 동맹군의 승리는 프랑스-바이에른 연합군으로부터 빈의 안전을 공고히 했고, 대동맹이 붕괴되는 것을 막아냈다. 바이에른은 전쟁에서 이탈 했으며, 루이 14세는 끝을 보기 위한 빠른 승리를 원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영국에게 체포된 탈라르 원수를 포함해 30,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1704년이 가기전에가기 전에 전역은 끝이 났다. 동맹군은 다음해다음 해인 전역에는[[1705년]] 프랑스 본토로 진군해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 [[트리어]](Trier)의 도시들과, [[란다우]](Landau) 그리고 [[모젤]](Moselle)에 있는 [[트라바체]](Trarbach)를 점령했다.
 
== 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