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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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파일:신문왕릉 무덤.jpg|썸네일|신문왕릉]]
즉위 직후에, 당나라는 아버지 문무왕의 관직과 작위인<개부의동삼사·상주국·낙랑군왕·신라왕>을 계승하게 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즉위로부터 한 달과 지나기 전에, 왕비의 아버지인 소판 김흠돌과 파진찬 김흥원(金興元)등의 왕족과, 문무왕 시대 상대등인 이찬 김군관(金軍官)이 반란을 꾀했다고 해서 죽였다. 반란 진압의 2개월 후에는 왕궁 경호로서 장군 6명을 배치하고 있어, 중앙 귀족 세력의 억압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한 숙청극이라고 생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