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 (사상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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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曾子, [[기원전 505년]]~[[기원전 435년]])는 [[중국]] [[전국 시대]]의 [[유가]](儒家) 사상가이다.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輿)이며, 증자는 존칭이다. 남무성(南武城, 지금의 [[산둥 성]]) 출신이다.
 
[[공자]]의 만년의 제자로서 공자보다도 46세 연하이다. 공자 사후 유가의 유력한 일파를 형성하여 공자사상의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켰다. 그의 언행은 《[[논어]]》에 몇 조목이 보이며, 또 《대대례기(大戴禮記)》의 증자 10편 및 《효경(孝經)》은 그의 저작이라고 인정된다. 그는 당시 진행 중이던 봉건제의 붕괴를 제지하기 위하여 씨족제로부터 비롯된‘효(孝)’라는 덕목을 강조하였다.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펴본다”라고살펴본다(三省吾身:삼성오신;증자가"나는 매일 나 자신을 세번씩 반성한다. 남을 위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정성을 다 하였는가. 벗들과 함께 서로 사귀는데에 있어 신의를 다 하였는가.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하여서 익혔는가.)”라고 하여 공자 사상의 근본을 충서(忠恕)라는 말로 표현하여 공자 사상의 계승자로서의 그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증자의 학통은 [[자사]], [[맹자]]에로 발전하여 유가의 도통을 전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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