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클라르제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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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세기 국가들의 타오-클라르제티===
[[그림:83principality-taykc.gif|thumb|타오-클라르제티의 공국들과 주변 영토들]]
조지아의 [[이베리아 공국|왕자]]([[에리스므타바리]])인 [[바그라티오니]] 가문의 [[아솟 1세]]가 [[클라르제티]]를 [[아랍인|아랍]]의 점령에 대항하한대항하는 그의 전투 기지로 만들었다. 813년에는 타오-클르제티에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비잔틴]]의 종주권을 인식하여, 쿠로팔라테스의 칭호를 얻었고, 조지아 공국을 확립하였다. 조지아의 왕은 비잔틴에게 이베리아의 쿠로팔라타테(쿠로팔라티나테)로 알려졌다. 아솟은 아랍의 지배로 부터 [[타오]], 코라, 아르타니와 샤브셰티의 주변 영토들과 몇몇 다른 작은 땅들도 다함께, 점진적인 해방을 위하여, 거기에서 아랍과 싸웠다. 그는 그 영토들에서 조지아의 재정주를 촉진하였고, 클라르제티에서 중요한 조지아의 성직자 성상 [[그리고르 칸드즈테리]](칸드즈타의 그레고리우스, 759~861년)에 의해 입문된 수도자들의 생활을 후원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지역은 [[조지아의 문화|문화]])적인 은신처와, 조지아의 가장 중요한 [[조지아 정교회|종교]] 중심지 중에 한 곳이 되었다.
 
아솟의 후계자들은 [[카르틀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전투를 계속했고, 또한 동 조지아([[에그리시]])와,[[압하지아]] 왕조, [[아랍인|아랍]]의 [[트릴리시의 토후국]]과, [[카케티]](동조지아에 있던 왕국)과 [[아르메니아]]와 통지자들과도 경쟁했다. 그러나 공국에서의 드물지 않은 내부불화는 중요한 지장이 되었다. [[다비드 1세 쿠로팔라테스]](876~881년)의 암살이 뒤따른 시민전쟁은 아다르나세 1세의 주된 경쟁자, 다비드를 [[나스라]]가 살해함으로 [[아다르나세 1세]](881~923년) 에게 승리를 가져다 줬고, 888년에 그가 조지아의 왕으로 왕위에 오르도록 허락했다. 아다르나세의 아들 [[다비드 2세 마기스트로스]](923~937)의 통치 기간동안에, 조지아는 [[비잔틴]]의 침략에 대항하여 막아내기도 하였고, 그 난관은 그들이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바그라티오니 왕조|바그라티오니]]왕조는 종가는 [[타오]]와 카르트벨리아의 왕의 칭호를 유지하며, 다른 가문은 [[클라르제티]]를 통제하고, 또 다른 가문은 명목상 왕의 군주권을 지명하여 승인하는 3 부류의 가문으로 분리되어 그들의 왕국의 통합하는데 실패했다, 카르트벨리아 왕국은 타오 왕권에 더하거나 덜 의지하는 몇몇 다른 소군주국들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