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개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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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파''' 또는 '''사두가이파'''는 [[유대교]] [[코헨|제사장]]<ref>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야훼]] 하나님께 동물이나[[동물]]이나 고운 밀가루로[[밀가루]]로 희생제사를 드리던 [[성직자]]를 말한다. [[공동번역]]에는 사제, 개역한글판에는[[개역한글판]]에는 제사장으로 번역되어 있다.</ref>을 중심으로 한 [[사상 (철학)|사상]] 세력으로서 [[유대교]]의 조류이다.
 
== 개설 ==
사두가이는 [[다윗]] 시대의 대사제([[코헨 가돌|대제사장]](대사제)였던이었던 사독에서[[자독|사독]]에서 파생된 말로, 사독의 후손들은 [[마카베오]] 시대까지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들은 [[바리사이 파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함께 [[산헤드린]] 의회에서[[의회]]에서 법관의[[판사|법관]]의 역할도 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사도행전]]에 [[사도]] [[파울롯|바울]]이 산헤드린 의회에서 재판을[[재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사도 23:1-9). 그들은 모세 오경으로만[[토라|모세오경]]으로만 국한된 [[모세 법에]][[율법|법]]에 배타적으로 집착하고, 바리사이 파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받아들인 온갖 주석과 전승들을[[전승]]들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구별된다. 그들은 특히 천사나[[천사]]나 악마의[[악마]]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활 사상과 내세에서의[[내세]]에서의 보상([[마태오 복음서|마태]] 22:22-33)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사도 23:8-9). 그리하여 [[누가루카 복음서|누가의 복음서]]에는 부활에 대해 사두가이파와 [[예수]]가 논쟁을 벌였다는 내용이 나온다(누가 20:27-38). 사두가이 파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유대교의 [[유대교신학]] 신학과 전통을[[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바리사이 파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달리 [[헬레니즘]]의 영향을 그대로 방치했다. 광야에서 [[세례자세례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족속들’(마태 3:7)로 취급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인 기득권을 누린 친로마파였다. 하지만 사두가이파들의 활동무대였던 [[예루살렘]]이 [[유대독립전쟁]]으로
붕괴되면서 사두가이파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