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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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무'''(李從茂,[[1360년]] ~ [[1425년]])는 [[조선]]의 무신이다. 본관은 [[장수군|장수]]이며 어려서부터 말타기·활쏘기에 능하였으며, [[대마도쓰시마 섬]] 정벌하는 공을 세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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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
[[조선 세종|세종]] 원년 [[1419년]]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가 되어 군함 227척을 거느리고 [[쓰시마 섬]]을 정복하였다.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하여 [[1419년]] [[음력 6월 12일]] 주원방포(현 [[추봉도]])를 기착지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원년 [[음력 6월 19일]] 이종무가 거제도 남쪽에 있는 주원방포(周原防浦)에서 출발하여 다시 대마도로쓰시마 섬으로 향하였다. <ref>{{웹 인용
|url =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da_10106019_007&grp=&aid=&sid=2202988&pos=0
|제목 = 이종무가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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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일자 =
|인용 =
}}</ref>당시 총 227척의 규모로 출정을 하였으며, 6월 17일 출발하여 바람(마파람) 때문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6월 20일]] 오시에 대마도에쓰시마 섬에 도착하여, 두지포에 내려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적선 129척을 빼앗고, 가옥 1993호를 불태웠으며, 중국인이 포함된 포로를 구출하였다. <ref>{{웹 인용
|url = 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da_10106020_004&grp=&aid=&sid=0&pos=0
|제목 = 대마도에 도착하여 성과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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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그 후 끝없는 탄핵 요청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이종무를 감쌌으며, 1420년 6월 5일 풀려나 서울 밖에서 거주하게 된다.
 
[[1423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명]]를 출발하여, 이듬해 [[1424년]] [[2월 25일]] 부사 이종선과 함께 돌아왔다.
 
[[1425년]] [[음력 6월 9일]]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세종은 조회를 3일간 중단하고, 양후(襄厚)라는 시호를 내렸다. 6월 17일 내린 교서에서 세종은 《만리장성이 갑자기 무너졌다!》라는 표현으로 비통함을 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