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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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한중 지배===
유언이 죽고 [[유장 (후한)|유장]](劉璋)이 뒤를 잇자 저를 따르지 않았다. 유장은 장로의 어머니와 식구들을 모조리 죽였고, [[방희]] 등을 파견해 장로를 공격했지만, 장로는 항상 이겼다. 장로는 한중에서 독립하여 한중의 이름을 한녕으로 바꾸었다. 스스로 사군(師君)이라 칭하고 초학(初學)의 제자를 귀졸(鬼卒), 신자를 간령(姦令)·좨주(祭酒) 등으로 불러 한중과 파에서 제정(祭政) 일치의 종교 왕국을 세웠다. 좨주는 백성을 가르치고, 병자로 하여금 자기 과실을 털어놓게 하였으며, 의사(義舍)를 설치하여 쌀과 고기를 공짜로 의사 안에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했다. 범법자는 세 번 용서한 후에 처벌했다. 이렇게 하여, 관리를 두지 않고 좨주들로써 잘 통치했다. 조정에서는 장로를 정토할 수 없어, 진민중랑장·영 한녕태수로 봉하여 단지 공물만을 받았다. 백성이 땅에서 옥으로 된 인장을 얻어, 사람들이 장로를 한녕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장로는 [[염포]](閻圃)의 반대 의견을 따라 이를 거부했다.
 
===조조의 공격, 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