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제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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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건안(建安) · 한흥(漢興) · 남평(南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203년]] 하제는 군을 이끌고 진격하여 불복종자들을 진압하였고, 그 공로로 평동교위(平東校尉)로 임명되었다. [[205년]], [[손권]](孫權)은 하제에게 회계(會稽) 남부의 상요(上饒)를 토벌하게 하였고, 하제는 상요를 나누어 건평현(建平縣)을 신설하였다.
 
[[206년208년]], 하제는 위무중랑장(威武中郞將)으로 승진하였고, 단양(丹陽) · 이(黟) · 흡(歙)을 평정하였다. 이후 이와 흡의 불복종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격파한 뒤 흡현(歙縣)을 나누어 신도군(新都郡)을 신설하였고, 손권은 하제를 태수(太守)로 임명하면서 편장군(偏将軍)을 더했다.
 
[[222년]], [[위나라]]가 오나라를 세 방면에서 침공하자, 양주(揚州) 방면으로 진격한 [[조휴]](曹休) 등을 [[여범]](呂範), [[서성 (오나라)|서성]](徐盛) 등이 동구(洞口)에서 막으려 하였으나, 여범이 이끄는 군대는 큰 폭풍우를 만나 병사 수천 명이 익사했고, 위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격파당했다. 하지만 하제는 [[장강]](長江)을 건너지 않은 채 신시(新市)의 수비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제는 항상 자신의 군대를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무장시켜 전투에 임했으며, 조휴 등은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물러났다. 이 싸움 후 후장군(後将軍)에 임명되었으며, 가절(仮節)을 받아 서주목(徐州牧)을 배령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