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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Al-Sultan al-'Azam wal Khaqan al-Mukarram, Jam-i-Sultanat-i-haqiqi wa Majazi, Sayyid al-Salatin, Abu'l Muzaffar Nasir ud-din Muhammad Humayun Padshah Ghazi, Zillu'llah)([[1508년]] [[3월 17일]] ~ [[1556년]] [[3월 4일]])은 [[무굴 제국]]의 두 번째 황제로,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북인도를 [[1530년]] ~ [[1540년]]까지 다스렸다. 선황 [[바부르]]와 비슷하게 즉위 초기 많은 영토를 잃었지만,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결국 더 큰 나라를 얻었다. 학식이 높고 문화에 대한 조예가 깊은 교양인으로 알려지지만, 재위 기간중 무굴 제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530년]], 22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 구자라트와 말와를 정복하였으나 1년여 만에 통제력을 잃었다. 아프간계 [[수르 왕조]]의 [[셰르 샤]]에게 1539년 1540년 두 차례나 패해, 제국의 통치권을 잃었다. 사파비 왕조에게 몸을 피신한 후, 15년간 망명군주로서 지낸다.
그의 부황 [[바부르]]와 같이, 그는 일찍이 그의 왕국을 잃었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결국 더 큰 나라를 얻었다.
 
셰르 샤가 피살된 후, 수르 왕조의 내분을 틈타 [[사파비 왕조]]의 지원을 얻어지원으로 [[1555년]] 인도를 재정복해 다시 즉위했으나, [[1556년]] 궁전 도서관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고죽었다. 13살에 13살의즉위한 어린후마르의 나이의아들 [[악바르]] 즉위했다치세기간 무굴 제국은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그의 부황을 [[1530년]]에 22세에 계승하였으나, 그의 이복 형제 [[캄란 미르가]]와 아프간계 [[수르 왕조]]의 지도자 [[셰르 샤]]는 비운의 경쟁 상대가 되어 제국의 북부의 [[카불]]과 [[라호르]]의 주권을 획득하였다.
 
델리 동남쪽 교외에 남아 있는 [[델리의 후마윤 묘지|후마윤의 무덤]]은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이다.
[[사파비 왕조]]의 지원을 얻어 [[1555년]] 인도를 재정복해 다시 즉위했으나, [[1556년]] 궁전 도서관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고 13살의 어린 나이의 [[악바르]]가 즉위했다.
 
델리 동남쪽 교외에 [[후마윤의 무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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