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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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위키리크스는 2007년 1월에 처음 웹 상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위키리크스 게시판의 고문의 회원이라고 밝힌(후에, 위키리크스의 창립자라고 밝혀졌다) 줄리안 어센지같은 대중에 공개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원이 밝혀져 있지 않다. 2009년 6월 즈음, 이 사이트는 1200여명이1200여 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이 올라와 있고, 어센지, 필립 아담스, 왕 단, CJ 힌케, 벤 로리에, 타시 남걀 캄시트상, 샤오 치앙, 치코 휘트테이커, 그리고 왕 유카이의 고문들이 목록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2010년 《마더 존스》 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목록에 오른 고문들 가운데 몇몇은 그들이 사이트에 언급된지언급된 지 몰랐거나 어떻게 자신의 이름이 거기에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캄시트상, 그는 고문이 되기로 동의한 적 없으며, [[노암 촘스키]]는 [[페이스북]]의 위키리크스 모임의 스스로 자원한 관리자로서 등록되어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위키리크스의 주요관심은주요 관심은 [[아시아]], 이전 [[소비에트 연방]],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지역의중동 지역의 압제적인 규율, 관습, 제도 등을 유출시키는유출하는 데 있지만 또한, 위키리크스는 압제적인 정부, 그리고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모든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참여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2007년 1월, 웹사이트는 대중에 공개될 준비가 된 기밀 문서들이기밀문서들이 120만 건 있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장비의 지출비용 문건부터 [[케냐]]의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항목들이 첫 페이지에 오르며 다른 중요한 문서들이 방출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내부고발자들과 기자들이 [[천안문 광장]]의 학살 기념일에 대한 중국인 고위 공무원으로부터공무원에게서 온 이메일을 대중에 공개한 이후 2005년 10년형을 구형 받았던구형받았던 중국인 기자 [[시 타오]]일을 참고하여, 민감한 메일, 문서들로 인해말미암아 감옥에 가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의 다니엘 엘스버그의 누설에서 유래되었다. 미국에서는 몇몇 문서의 누설은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는 헌법상 적어도 정치적인 연설의 분야에서만큼은 익명성 보장을 규정했다. 작가이자 기자인 휘틀리 스트라이버는 "정부“정부 문서의 누설은 감옥을 의미할 수는 있지만, 감옥은 공정하게공정하고 짧게 구형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감금 혹은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는 중국,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지역중동 지역 같은 많은 지역들이지역이 있다."라며”라며 이 위키리크스 프로젝트의 이점에 대해서 연설했다.
 
이 사이트는 2008년 [[이코노미스트]]의 《뉴 미디어 어워드》를 포함하여 수많은 중요한 상을 수상했다받았다. 그리고 2009년 6월, 위키리크스와 줄리안 어센지는 2009년 영국 [[국제사면위원회]]의 《미디어 어워드》를 케냐의케냐 경찰들의 살인에 대한 인권을 위한 케냐 국립 위원회의 보고서에 의한 "케냐 Kenya: 피의The Cry of Blood – Extra 눈물-Judicial 과도한Killings 사형과and 사라짐Disappearances"의 2008을 출판한 데 대하여 상을 받았다.
 
== 활동 중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