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번 첸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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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년]], 송첸캄포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예물을 교환한다. 또한 왕국의 남쪽에 위치하는 [[네팔]]의 릿체비 왕조에 사자를 보내, 브리티크 데이비(赤尊公主)를 왕비로 맞이한다. 636년, [[당 태종]]에게 당나라의 황녀를 왕비로 맞이하고자 사자를 보냈지만, 같은 티베트의 유목민 부족인 [[토욕혼]]을 이유로 거절당한다. 같은 해 왕은 20만의 군사를 일으켜, 당의 속국이던 [[토욕혼]]에 출병하여 정벌하였고, 백란 등의 강족의 마을을 공략하고, 송주(현 사천성 송반현)를 요구하기도 했다. 몇몇 학자들은 이전투에서 당이 승리했다고 하나 토번측의 사상자가 1천임에 비해서 당군 사망자가 2만인것을 비교한다면 설득력에서 문제를 얻게 된다 그 후 다시 태종에게 특사 [[가르통첸]](재임 652-667)을 보내, 금 오천령을 납폐로서 주고, [[641년]] 당 태종의 조카딸인 [[문성공주]]를 왕비로서 맞이한다. 문성공주가 ‘자면의 풍습’(얼굴에 적토를 바르는 풍습)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포탈라궁을 건립하는등 공주에게 정성으로 대한다. 문성공주는 당나라에서 데려 온 장인들로 하여금 소소사(라모체)를 건립케 하고,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상을 모셨고, 첫 왕비인 브리크티 데이비의 [[조캉사원]] 건립을 도왔다. 문성공주가 가지고 온 신진산물은 토번의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646년]] 왕은 고구려 승전 축하연에 가르통첸을 축하사절로 보냈다. [[647년]], 바르다나조 북인도의 왕, [[하르샤|하르샤·바르다나(계일왕)]]가 죽어 혼란한 바르다나 왕조에 1천5백의 기마병을 파병해, 정권을 찬탈한 아르쥬나를 잡아 당의 사자 왕현책을 보호했다. [[649년]], 태종이 죽고 [[당 고종]]이 즉위 하면서, 왕은 ‘부마도위’, ‘서해군왕’의 관직과 많은 예물을 받는다. 이에 태종의 영전에 15종의 금은주옥을 올리자, 당나라는 ‘빈왕’의 호칭을 더하고 예물로 화답하였다. 또 뛰어난 당의 공예기술(누에씨, 주조, 제지, 제묵)을 도입하기 위해 당나라 장인을 요청하여 파견받았다. 이렇게 티벳을 발전시킨 송첸캄포 왕은 [[650년] 병으로 사망했다.
 
== 역대 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