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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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후한]]의 정치와 권력은 [[십상시]]라 불리는 10명의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후한]] 12대 [[황제]] [[후한 영제|영제]]는 무능하고 병약해 [[십상시]]들의 말을 따랐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였다.
[[십상시]]는 [[장양 (
[[189년]] [[후한 영제|영제]]의 병이 깊자 [[후한 영제|영제]]는 [[십상시]] 중 한 명인 [[건석]]과 후계자 자리를 논의하고 [[건석]]은 [[후한 영제 (12대)|영제]]의 황후 [[하태후|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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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건석]]은 [[원소 (삼국지)|원소]]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십상시]]들 중 한 명인 곽승에게 살해당한다. 그 뒤 [[하진]]과 [[하황후|하태후]]는 진류왕 [[후한 헌제|유협]]의 어머니 [[왕미인]]과 [[후한 영제|영제]]의 어머니 [[동태후]]와 [[동중]] 등을 내쫓아 독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원소 (삼국지)|원소]]는 주부 진림과 노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모아 [[십상시]]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이에 [[십상시]]의 수장 [[장양 (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서량 자사 [[동탁]]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민지에 주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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