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 (서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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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는 [[관구검]](毌丘儉)의 추거를 받아 [[조상 (조위)|조상]](曺爽)에게 불러졌으며, [[244년]] 아버지 [[배잠]](裴潛)이 죽자 뒤를 이어 황문시랑(黄門侍郎)이 되었다. [[249년]] 조상이 처형당하자 면직되었으나, [[사마소]](司馬昭)에게 천거되어 신기상시(散騎常侍)에 배령되었다.
 
배수는 [[조방]](曹芳)이 폐위된 이후 황제에 즉위한 [[조모]](曹髦)와 가까운 사이로 지냈으며, 조모는 배수에게 '유림장인(儒林丈人)'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조방은 배수와 [[사마망]](司馬望), [[왕침]](王沈), [[진태]](陳泰)와 함께 동어전(東御殿)에서 토론회를 벌였으며, 문학론(文学論)을 지었다. [[제갈탄]](諸葛誕)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태]](陳泰) · [[종회]](鍾會)와 함께 참모로 출정하였다.
 
사마소의 후계자를 정할 당시에는 장남 [[사마염]](司馬炎)을 천거하였으며, 사마염이 [[조환]](曹奐)에게 선위받아 황제가 되었을 때 [[가충]](賈充) · [[왕침]](王沈) · [[양호]](羊祜) · [[순욱 (공증)|순욱]](荀勗) 등과 함께 중심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