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의 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9번째 줄:
[[189년]] [[후한 영제|영제]]의 병이 깊자 [[후한 영제|영제]]는 [[십상시]] 중 한 명인 [[건석]]과 후계자 자리를 논의하고 [[건석]]은 [[후한 영제 (12대)|영제]]의 황후 [[하태후|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건석]]의 계획은 사마 [[반은]]에 의해 [[하진]]에게 발각되고 [[후한 영제|영제]]가 곧바로 승하하자 [[하진]]은 자신의 조카 [[후한 소제 (13대)|유변]]을 [[황제]]로 세우기 위해 사예교위 [[원소 (삼국지후한)|원소]]에게 5000명의 군사를 주어 궁궐로 쳐들어가게한다. 뒤이어 전군교위 [[조조]]와 신하 [[하옹]], [[순유]], [[정태]] 등 대신 30명도 궁궐로 들어와 태자 [[후한 소제 (13대)|유변]]을 후한 13대 황제 소제로 즉위시킨다.
 
한편 [[건석]]은 [[원소 (삼국지후한)|원소]]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십상시]]들 중 한 명인 곽승에게 살해당한다. 그 뒤 [[하진]]과 [[하황후|하태후]]는 진류왕 [[후한 헌제|유협]]의 어머니 [[왕미인]]과 [[후한 영제|영제]]의 어머니 [[동태후]]와 [[동중]] 등을 내쫓아 독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원소 (삼국지후한)|원소]]는 주부 진림과 노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모아 [[십상시]]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이에 [[십상시]]의 수장 [[장양 (후한)|장양]]은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서량 자사 [[동탁]]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민지에 주둔한다.
20번째 줄:
[[189년]] [[8월 25일]] [[십상시]]들은 [[하태후]]의 명령을 위조해 [[하진]]을 [[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 [[하진]]은 결국 [[십상시]]들과 상방감 [[거목]]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에 [[하진]]이 죽자 하진의 부하 [[오광 (후한) |오광]]이 청쇄문 밖에 불을 질렀고 진군교위 [[조조]]와 사예교위 [[원소 (삼국지후한)|원소]]는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고 [[원소 (삼국지후한)|원소]]의 동생 [[원술]]도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취화루 아래에서 조충, 정광, 하운, 곽승 등이 베이고 군사들은 [[십상시]]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으며 [[환관]]들도 모두 살해했는데 이 때문에 수염 없는 사람들도 [[환관]]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했다. [[하진]]의 동생 [[하묘]]도 난입해 십상시 중 한 명이던 조충을 죽였으나 오광에게 가담자로 오해받아 살해당했고 [[하진]]을 살해했던 상방감 [[거목]]을 포함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락궁]]에서 살해당해 십상시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29번째 줄:
장양과 단규는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하남 중부연리 [[민공 (후한)|민공]]의 습격을 받아 장양은 연못에 빠져 자결하고 단규, 후람, 조절은 소제와 유협을 잃어버려 뒤쫓아온 민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소제와 유협은 선비 [[최의 (후한) |최의]]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원소와 조조, [[왕윤]], [[양표]], [[순우경]], [[조맹]], [[포신]] 등의 신하들을 만나 낙양으로 향한다. 이때 민지에 주둔하던 서량 자사 동탁이 사위 [[이유 (후한)|이유]], 동생 [[동민]]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오고 [[동탁]]은 병권을 장악하여 [[원소 (삼국지후한)|원소]]를 발해 태수로 내쫓고 [[하진]]의 어머니 [[무양군]]을 비롯해 하씨 일족을 모두 멸족시키면서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절단하여 길에다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리고 진류왕 유협을 황제로 세우려 들고 이에 [[병주]] 자사 [[정원 (후한)|정원]]이 양아들 [[여포]]를 내세워 동탁을 막으려 하지만 도리어 동탁의 사위 중랑장 [[이숙 (후한) |이숙]]의 음모로 양아들 여포에 의해 살해당하고 동탁은 반대하던 신하 [[정관]]을 죽이고 황제 유변과 하태후를 폐위시켜 살해했으며 진류왕 유협을 후한 14대 황제 헌제로 즉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