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3번째 줄: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II)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7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고 본다. 한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 제국|일본]]의 [[중화민국의 역사|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한다.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이 결과로 [[한국]], [[타이완]] 등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였다.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도 약 3천만 명에 달했다. 전쟁 기간 중 일본은 1937년 중국 침략 때 [[난징]] 등에서 대학살을 감행, 겁탈과 방화를 일삼으며 수십만 난징 시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1938년부터 일본인을 비롯한 조선인, 중국인, 동남 아시아인 등 여러 나라의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독일은 ‘[[민족청소|인종 청소]]’라는 이유로 수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였다. 또한 미국은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재일 조선인 포함), 같은 해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 시|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약 34만 명을 살상하였고 영국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는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하는 등, 전쟁의 피해는 매우 심하였다.
 
전쟁은 크게 [[서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서부 유럽 전선]], [[동부 전선 (제2차 세계 대전)|동부유럽 전선]]과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태평양 전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31번째 줄:
영국, 프랑스 등 열강 세력은 방대한 [[식민지]]를 확보하고, 이들 식민지와의 무역을 독점하는 블록화된 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반면, 오랜 기간 동안 분열 되어 있다가 새로이 통일된 근대 민족국가로 태어난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19세기에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 등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식민지가 충분치 않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과의 무역에 의존한 경제를 가지고 있었는데,[[1929년]] ~ [[1933년]]의 [[세계경제대공황]] 이후 각국이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도입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취함에 따라 이들 [[자본주의]] 후발 국가들은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한편 [[1차 세계대전]]으로 [[알자스]]·[[로렌]] 지방 등 영토를 상실하고, 막대한 전쟁보상금과 이를 갚기 위한 무리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독일과 [[제 1차 세계 대전]] 승전국이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밀려 아무런 이권을 얻지 못한 이탈리아 등에서는 [[파시즘]]이라는 배타적 민족주의가국가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이에 [[러시아 혁명]] 이후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경계심과 영국과 프랑스 등 기존 열강에 대한 반발심, 배타적인 [[민족주의]], [[반공주의인종주의]]를 공통점으로 하는 독일의 [[독일 나치스당|나치스당]]과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파시스트 당|파시스트 당]]이 집권하였는데 이들이 집권하기 전인 [[1929년]]에 전 세계에 닥쳐온 경제공황으로 경제상황이 매우 어려워지자 기존 열강들이 중심이 된 경제체제 하에서 마땅히 이를 타개할 방법이 없던 이들 국가들은 전쟁을 통한 식민지 확보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 하게 되어 기존 열강들과의 갈등관계를 심화시켰다.
 
[[베르사유조약]] 파기를 주장하며 [[1933년]]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는 같은 해 10월, [[제네바]] 군축회의 결과의 불만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였으며, [[1935년]] 3월에는 재군비를 선언, [[1936년]] 3월 [[라인란트]] 비무장지대에 진주하여 [[로카르노 조약]]을 파기함과 아울러 [[베르사유 조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독일이 재무장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37년]] 11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합병을 결의한 히틀러는 [[1938년]] 2월 일련의 인사이동으로 [[나치스 체제]]를 강화하고, 같은 해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