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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王振, ? - [[1449년]])은 명나라대의[[명나라]]대의 환관환관이다. [[정통제]] 영종의 즉위 후에 정치를 독점했지만, [[토목의 변]]으로 경호 무사들에게 피살당하였다.
 
==생애==
울주([[허베이 성]] 울현)의 출신출신이다. 내시양성 기관인 내서당의 출신으로, 학식이 뛰어나고, 선덕 연간에 황태자(후의 영종)의 교육을 담당했기 때문에, 영종 즉위 후에 사례감의 장인 장앙태감이 되었고, 문서의 개편 등의 전횡을 행하였다.
 
정통제 7년([[1442년]])에 태황태후 장씨([[성효소황후]])가 승하하자, 그 전후의 조정의 유력자가 되었다. 양영, 양사기, 양부의 3인이 죽음으로 은퇴하면서, 점점 권세를 부려 수뢰로 재산을 축적하고 반대자를 탄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