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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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가치===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은 [[1897년]]에 건축되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개신교]] 교회로 불리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파이프 오르간]]도 [[1918년]]에 이 교회에 봉헌되었으며, 정동성가대는 한국의 개신교 음악 문화를 선도했다. [[1887년]]에 설립된 정동부인병원은 한국 최초의 [[어린이]]와 [[부녀자]] 전용 [[병원]]이다. 정동에는 초기 [[개신교]] 학교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설립되어 [[개화기]] 신교육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다.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으며, 개화기에 많은 음악가를 배출하였다.
 
===역사적 공헌===
정동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아펜젤러]]선교사가 맡았고, [[1902년]]에 제4대 담임[[목사]]로 [[최병헌]] 목사가 부임하면서 한국인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제5대 [[현순]], 제6대 [[손정도]], 제7대 [[이필주]] 담임목사는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들이다. [[1919년]]에는 담임목사 이필주와 전도사 [[박동완]]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면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한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도 정동교회 신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