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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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孫權)과는 함께 면학에 힘쓴 학우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신뢰는 돈독했다. [[손책]] 사후 [[손권]]을 섬겨 19세 때에 여요현의 장이 되었다. [[손권]]에게 재능을 높게 평가받아 머지 않아 산음현령, 임천태수가 되었고, 병사 2000명을 맡았다.그 무렵, 산적의 반란이 있었으나 1개월쯤 지나서 평정했다. [[조조]](曹操)가 유수구를 침공했을 때도 그곳의 방비를 맡았고 그 공으로 편장군으로 임명되었다.
 
219년 [[관우]](關羽) 토벌전에서는 [[여몽]](呂蒙)을 따라가 [[반장 (오나라)|반장]](潘璋)과 함께 [[관우]]를 생포하는 활약을 했고 그 공으로 소무장군으로 승진과 동시에 서안향후로 책봉된다. [[여몽]]의 병세가 위독해질 때 [[여몽]]은 [[손권]]에게「주연은 대담함과 지조가 뛰어나다」 면서 주연을 자신의 후계자로 추천했다. [[여몽]]이 죽고 난 뒤 [[손권]]은 주연에게 부절을 줘 강릉을 지키게했다.
 
222년 [[유비]](劉備)가 침공해오자 [[육손]](陸遜)과 함께 [[유비]]에게 대항했다. 주연은 별동대를 인솔해 [[유비]]의 퇴로를 차단시켜 [[유비]]를 격파하는데 성공, 그 공으로 정북장군으로 승진하고 영안후로 책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