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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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영국의 군주|영국의 왕위 요구자]]<br>[[스튜어트 왕조|스튜어트 왕조의 왕실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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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Charles Edward Stuart)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왕위 요구자로 [[제임스 2세]]의 손자이자 [[제임스 3세]]의 장남이었다. '''젊은 왕위 요구자'''로 불린다불리며,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보니 프린스 찰리'''(Bonnie Prince Charlie)라 불렀다. (대한민국의 외래어 표기법과 잉글랜드식 발음에 따르면 '찰리' 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인들은 '체얼리' 로 발음한다.) 1720년에 로마에서 태어났으며,태어났다. 제임스찰스 3세의에드워드 손자로써스튜어트의 스코틀랜드의아버지 재커바이트,제임스 3세는 제임스 2세2세의 지지자들에게아들이다. 연합왕국의제임스 왕위를2세를 계승해야지지하는 재커바이트들은 제임스 3세가 연합왕국의 왕위에 앉아야 사람으로한다고 여겨졌다주장했다. 그래서 재커바이트들은 1714년에 제임스 3세를 왕위에 앉힐 것을 요구하며 한 차례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바 있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제임스 3세가 죽은 뒤에 왕위를아버지의 계승해야자리를 할 사람으로 여겨졌다물려받았다. 그래서 재커바이트들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고, 1745년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왕위에 앉힐 것을 요구하며 마지막 반란을 일으켰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1745년 6월에 스코틀랜드로 입국했고, 이후 벌어진 재커바이트의 마지막 반란을 총 지휘했다. 그러나 1746년 컬로든 전투에서 재커바이트 군은 잉글랜드군에게 참패했고,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스카이 섬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떠났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1788년에 로마에서 죽었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상징물은 흰 장미꽃이었다.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는 이 흰 장미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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