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제임스 3세가 죽은 후 아버지의 자리, 곧 재커바이트들이 주장하는 연합왕국의 왕위 계승자가 되어야 할 사람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그래서 재커바이트들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고, 1745년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왕위에 앉힐 것을 요구하며 마지막 반란을 일으켰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1745년 6월에 스코틀랜드로 입국했고, 이후 벌어진 재커바이트의 마지막 반란을 총 지휘했다. 그러나 1746년 컬로든 전투에서 재커바이트 군은 참패했고,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스카이 섬을 거쳐 스코틀랜드를 떠났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는 1788년에 로마에서 죽었다.
== 관련 문화 ==
많은 고전과 현대 포크송들이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고전 포크송인 <뉴스 프롬 모이다트(News From Moidart)>, <컴 오버 더 스트림 찰리(Come over the Stream Charlie)>, <오버 더 워터(Over the Water)>, <컴 이 바이 어솔(Cam ye bt Atholl)>, 사운드 더 피브로크(Sound the Pibroch)등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상륙과 이어진 전투와 관련이 있고, <윌 이 노 컴 백 어게인<Will ye no come back again)>, <[[스카이의 뱃노래]](Skye Boat Song)>은 재커바이트 군의 패배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망명을 다루고 있다.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상징물은 흰 장미꽃이었다. 현대 포크송인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는 이 흰 장미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토막글|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