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스터 주교후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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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4년]] 선출된 클레베의 공작이기도 한 [[뮌스터의 요한 빌헬름|요한 빌헬름]] 주교는 결혼까지 했으며, 관구의 관리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종교 개혁에 대한 카톨릭측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중요한 주교령 중에 하나인 뮌스터 주교령의 주교위를 둘러싼 투쟁이 격렬해졌다. [[1585년]], 쾰른의 대주교이자, 리에주의 주교이기도 한 [[뮌스터의 에른스트|바이에른의 에른스트]]가 주교로 선출되면서 이 싸움은 카톨릭의 승리로 끝났다.
 
[[뮌스터의 에른스트|에른스트]] 주교는 전력으로 [[대응 종교 개혁]]에 헌신했다. [[예수회]]를 주교령에 초빙했으며, 그밖에도 [[종교 개혁]]에 대항하기 위한 많은 조치를 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로닝겐흐로닝언]]에 새로운 주교령이 창설되어 루터파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그밖에 여러 지역들이 이런 방식으로 주교령에서 분리되거나 주변의 루터파 제후의 영토로 잠식되었다.
 
[[1650년]] 선출된 [[뮌스터의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주교는 뮌스터를 포위 공성한 끝에 도시의 항복을 받아내고 루터파의 지도 하에 주교령으로부터 완전히 법적으로 분리되려 한 이 자치시의 시도를 분쇄했다. 또한 [[뮌스터의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주교는 [[제3차 영국-네덜란드 전쟁]]과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의 와중에 그 상대방과 동맹하여 이웃한 신교 국가,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를 공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