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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출생과 가계 ===
허건은 [[1907년]]<ref>허건의 출생 년도는 1908년생 설도 있다.</ref>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 [[조선 헌종|헌종]] 때 궁중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서·화’ 삼정이라 불리던 화공 소치 허유(또는 허련) 선생의 손자이며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 허윤대, 동생 허림 역시 화가였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충정공 허종(許琮)의 15대손으로 그의 선대는 대대로 화가 가문이었다. 아버지 허형은 그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만류하였으나 그는 화가가 되기를 고집하여 아버지도 그의 꿈을 꺽지는 못했다. 어깨너머로 사군자를 배웠다가 그림의 재주를 알아본 부친에게 화술을 전수받았다.
 
=== 일제 시대 활동 ===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서 [[조선]] [[조선 헌종|헌종]] 때 궁중화가였으며 시와 글씨, 그림에 뛰어나 ‘시·서·화’ 삼정이라 불리던 화공 소치 허유(또는 허련) 선생의 손자이며 마찬가지로 화가였던 미산 허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세조 때의 문신 충정공 허종(許琮)의 15대손으로 그의 선대는 대대로 화가 가문이었다. 아버지 허형은 그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만류하였으나 그는 화가가 되기를 고집하여 아버지도 그의 꿈을 꺽지는 못했다. 어깨너머로 사군자를 배웠다가 그림의 재주를 알아본 부친에게 화술을 전수받았다. 15세때 강진의 세류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집안이 목포로 이사하여 목포북소학교로 전학, 소학교 재학 중 전국소년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최고상을 수상했다. 1927년 목포 상업전수학원을 졸업하고 부친으로부터 익힌 그림이 제9회 선전(오늘날의 국전에 해당)에서부터 23회까지 연속 입선하고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첫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 및 총독상을 수상하였으나, 추운 겨울 화실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동상에 걸렸으나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치료를 못하고 1943년 36세 되던 해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
 
아버지 허형이 매각한 운림산방을 형 허윤대와 함께 돈을 모아 다시 매입하였고, 허윤대 사후 그가 운림산방을 관리하게 되었다.
 
=== 광복 이후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