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파사크 왕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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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삭은 고대 [[참 족]]이 세운 [[참파]] 지역이었다고 추정되는데, 이후 수년 동안 [[란쌍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1690년]] 스리냐 봉사 왕의 사망 후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하여 참파삭이 분리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690년]], 스리냐 봉사 왕이 죽자, 수도 비엔티안에서는[[비엔티안]]에서는 차기 국왕의 자리를 둘러싸고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에 스만카라 공주는 3,000명의 신하와 함께 메콩강을[[메콩강]]을 건너 참파삭에 살고 있는 유명한 승려였던 뇨토 케이오의 보호를 받았다. 이에 대해 비엔티안의 무앙 장 왕 (재위 1690년 - 1691년)은 무력으로 뇨토 케이오 일파의 제거에 대항하려고 했지만, 란쌍왕조의 약화를 노린 [[아유타야 왕조의왕조]]의 산 페트 9세의 계략으로 1713에 뇨토 케이오가 참파삭 독립을 선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참파삭 왕국의 기원이다.
 
독립 선언 후, 초대 국왕 스만카라 공주의 장녀인 노카사트가 즉위하여 참파삭을 통치하다가, 1737년 그녀의 사망 후 장남 사이냐 쿠만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동안 왕국은 평화가 견지되고 왕국의 세력은 점차 확대되어 갔다. 하지만, 1779년에[[1779년]]에 [[]]([[톤부리 왕조]])가 [[비엔티안 왕국 ]]과 루앙 왕국을 침공하여 제압하면서 참파삭 왕국에도 군대를 보냈기 때문에 왕국은 다른 두 나라와 마찬가지로 샴의 속령이 되었다.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