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187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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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5월 26일에 두 사람은 결혼하였으며, 알렉산드르 3세가 죽자 니콜라이가 [[황제]]로 등극하였고 그녀 역시 뒤따라서 황후가 되었다. 1895년 장녀 [[올가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올가]], 1897년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타티아나]], 1899년 [[마리아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마리아]], 1901년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아나스타샤]]를 출산하여 1901년까지 [[OTMA|여자아이 넷]]을 낳았다. 당시 왕족으로서는 드물게 아이들에게 [[모유]]를 직접 먹였다고 한다.
 
1904년, 고대하던 아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알렉세이]]가 태어났지만 [[빅토리아 (영국)|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물려받은 [[혈우병]]에 걸렸다. 알렉산드라는 러시아의 모든 의사를 불러 알렉세이를 치료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당시의 의학으로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때 친구인 안나의 소개로 용하다고 소문난 [[시베리아]]의 수도사 [[라스푸틴]]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라스푸틴은 소문과는 정반대로 [[파계승]]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 원인이 자신 때문이었다는 자책 때문이었는지, 제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자유스러운 몸을 타고난 아들에 대한 가여움 때문이었는지, 황후는 라스푸틴을 신격화 하여 그를 광적으로 믿으며 자신의 아들을 제발 치료해 달라고 빌었다. 통찰력이 뛰어났던 장녀 [[올가 로마노바|올가]]는 라스푸틴을 의심하여 그를 믿지 말라고 간언하였으나, 소용 없었다. 그로 인해, 일부에서는 황후가 라스푸틴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심지어는 [[OTMA|네 명의 황녀]]들이 모두 [[라스푸틴]]에게 몸을 바쳤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상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황후를 통해서 라스푸틴이 제정 말기의 러시아 황실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