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빅투아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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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Victoire de France.jpg|thumb|250px|14세의 빅트와르빅투아르 부인,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작, ([[1747년]])]]
'''마리 루이즈 테레즈 빅트와르빅투아르 드 프랑스'''(Marie-Louise-Thérèse-Victoire de France), 는 [[프랑스의 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왕비 사이의 8명의 딸 중 하나로 [[베르사유]]에서 [[1733년]] [[5월 11일]]에 출생하였고, [[1799년]] [[6월 7일]]에 [[트리에스테]]에서 사망하였다.
 
== 생애 ==
그녀의 자매들과 함께, 그녀는 [[1738년]] 부터 퐁드브로 수도원({{llang|fr|abbaye de Fontevrault}})에서 지냈다. 수도원장 루이즈 프랑스와 드 로슈아르 드 모르드마르(Louise-Françoise de Rochechouart de Mortemart)은 74세였고 그 당시 최고라 여겨졌으면 동시에 엄격하고 지혜롭다고 여겨졌다. [[1742년]] 루이즈 크래르 드 몽모랭 드 생 에랑(Louise-Claire de Montmorin de Saint Hérem)이 수도원장 자리를 이어받는다. [[1745년]] 빅트와르빅투아르 드 프랑스는 그녀의 자매들과 세례를 받았고 이때부터이 때부터 '''빅트와르빅투아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빅트와르는빅투아르는 왕들중 가장 외모가 출중했던 [[프랑스의 루이 15세|루이 15세]]의 딸들 중 가장 아름다웠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두고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드 놀악]](Pierre de Nolhac)은 이렇게 평가하였다.
 
{{인용문|''그녀의 어두운 눈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하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있었고 긴 눈썹들은 그녀의 볼을 어둡게 만들었다. 관능적인 입, 좁은 턱, 넓은 이마, 검은 머리들은 아름다운 얼굴을 이루었다.''}}
 
빅트와르는빅투아르는 [[1748년]]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 레슈친스카]]왕비와 그녀의 형제 [[도팽 루이 페르디낭|루이 페르니낭]], 그녀의 자매들가 가깝게 지녔고 그들과 그녀의 아버지 [[프랑스의 루이 15세|루이 15세]]의 외도를 슬퍼하였다.
 
빅트와르는빅투아르는 그녀의 형제 자매들과 같이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지만 왕궁 무도회는 좋아하지않았다. 그녀는 그 당시 유행했던 정원과 외국 식물을 좋아하였다. 그녀의 언니 엘리자벳(Elisabeth)은 [[1739년]] 스페인의 왕자 필립 1세(Philippe Ier de Parme)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1753년]] 엘리자벳은 필립 1세의 이복형제 스페인의 왕 [[스페인의 페르난도 6세|페르난도 6세]](Ferdinand VI d'Espagne)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스페인 왕비는 건강이 좋지않았고 또 얼마 후 페르난드 6세 또한 죽어서 이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동안, 친애왕 [[프랑스의 루이 15세|루이 15세]]와 [[마리 레슈친스카]]왕비 사이의 자식은 빅트와르와빅투아르와 아델라이드 (Adélaïde de France)공주 만 생존해있었다. 두 공주는 반기독교적 혁명에 반명에 반대하였고 [[1791년]] 2월 모욕들을 겪으며 [[프랑스]]를 떠났다.
 
그녀들은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먼저 [[피에몬테 주|삐에몽]]의 왕과 결혼한 그녀들의 조카 클로틸드(Clotilde)가 살고있는 [[토리노]], 그리고 [[교황 비오 6세]]에 의해 보호되는 [[로마]]로 갔고, 교황은 그녀들을 파르네즈궁(palais Farnèse)에서 살게 하였다.
 
[[프랑스]] 군대가 도착했을 때, 그녀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매가자매였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마리아 카롤리나]]<ref>그녀는 나폴리의 왕비(Queen Consort)였지만, 자식에게 쫒겨나기 이전까진 사실상 나폴리의 여왕(Queen)으로 군림하였다.</ref>가 다스리고 있는 [[나폴리]]로 갔지만 그녀는 빅트와르와빅투아르와 그의 자매를 보기를 별로 원치 않았다. 두 노년의 자매는 [[1798년]] 다시 [[아드리아 해]]를 건너며 도망을 치게 되었다.
 
[[1799년]] [[6월 7일]] 빅트와르가빅투아르가 먼저 [[트리에스테]]에서 [[유방암]]으로 사망하였고, 아델라이드 또한 8개월밖에 살지 못했다.
후일 그녀들의 시신은 또 다른 조카인 [[프랑스의 루이 18세|루이 18세]]가 프랑스로 가져왔고 왕가가 안치되어온 [[생드니 성당]]({{llang|fr|Basilique Saint-Denis}})에 묻혔다.
 
== 주석 ==
<references/>
 
[[분류:1733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