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하이트 폰 작센마이닝겐 공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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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delaide Amelia Louisa Theresa Caroline of Saxe-Coburg Meiningen by Sir William Beechey.jpg|thumb|작센 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Adelaide of Saxe-Meiningen , Adelaide Louise Theresa Carolinie Amelia, [[1792년]] [[8월 13일]] - [[1849년]] [[12월 2일]])은, 영국 국왕 [[윌리엄 4세]]의 왕비. 작센작센마이닝겐의 마이닝겐의 게오르그게오르크 1세의 장녀로써, 마이닝겐에서 태어났다. 독일 이름은 아델하이드 루이제 테레자 카롤리네 아멜리아(Adelheid Louise Theresa Caroline Amelia von Sachsen-Meiningen).
 
[[1817년]], 섭정 황태자 조지([[조지 4세]])의 장녀이자 [[벨기에의 레오폴 1세|레오폴드 1세]]의 왕비인배우자였던 샬럿이[[웨일스 공녀 샬럿 오거스타]]가 죽자, 국왕 [[조지 3세]]의 뒤를 이을 왕위계승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섭정에게도, 차남 요크 공 [[프레데릭 오거스트]]에게도 아이가 없었고, 셋째 아들인 클레런스 공작([[윌리엄 4세]])는 20년 가까이 도로시아 조단이라는 애인과 가정을 이루고 있었느나, 섭정은 무시하고 결혼 상대를 찾았다.
 
[[1818년]], 53세의 왕자는 26세의 아들레이드 공녀와 결혼하여, 생활비가 싼 [[하노버]]에서 살기 시작했다. 1819년, 1820년에 걸쳐 두 딸을 낳았으나 어려서 죽고, 부부는 하노버를 떠나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 이후에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상심한 그녀는 남편의 서자들(도로시아가 낳은 10명의 아이들)을 귀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