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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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군 사람 [[노육]]과는 지위도 명성도 비슷했지만, 서로 감정은 좋지 못했다.
{{전임후임▼
|전임자=[[왕릉 (조위)|왕릉]]▼
|후임자=[[사마부]]▼
|직책=[[위 (삼국)|조위]]의 사공▼
|임기=[[249년]] [[음력 12월 18일|12월 18일]] ~ [[250년]] [[음력 11월|11월]]▼
}}▼
{{조위의 재상}}▼
==평가==
[[최염]]은 손례가 처음 출사했을 무렵 성글고 밝고 격하고 강인하며 결단에 능하며 …(중략-노육을 평한 부분)… 둘 다(손례, 노육) 훗날 삼공에 이르리라고 평했고, 그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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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년]] 제갈량의 4차 북벌 때도 참전했고 [[234년]] 제갈량의 5차 북벌 때는 곽회와 함께 [[북원]]에 요새를 마련해두고 그곳을 공격하던 촉군을 크게 무찌른다.
▲{{전임후임
▲|전임자=[[왕릉 (조위)|왕릉]]
▲|후임자=[[사마부]]
▲|직책=[[위 (삼국)|조위]]의 사공
▲|임기=[[249년]] [[음력 12월 18일|12월 18일]] ~ [[250년]] [[음력 11월|11월]]
▲}}
▲{{조위의 재상}}
[[분류:삼국지 위나라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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