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에시 푸와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폴란드의 포돌리아(현재 [[우크라이나]]의 일부분)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폴란드를 통치했던 [[러시아]]에 대항하는 반란을 지도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프랑스]]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을 만나 미국인의 주장을 배우면서, 프랭클린의 격려에 의하여 미국으로 떠난다.
 
[[1777년]] 미국으로 항해하여, 거기서 [[조지 워싱턴]] 장군을 섬겼다. 섬겼고 워싱턴의 주장으로 [[미국 의회]]는 푸와스키를 육군 준장으로 만들었다. 전문적 [[기사 (군사)|기사]]였넌 그는 푸아스키 부대라 알려진 기사단을 결성하여 남부에서 용맹스러운 활약을 펼쳤다. [[1779년]] [[조지아 주]] 서배나의 포위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10월 9일]] 상처를 입고 이틀 후에 사망하였다.
 
[[1779년]] [[조지아 주]] 서배나의 포위에 참전하여 싸우다가 [[10월 9일]] 상처를 입고 이틀 후에 사망하였다.
 
미국 의회의 결의에 의하여, [[10월 11일]]을 "푸와스키의 날"로 정하였고, [[시카고]]를 비롯한 폴란드계의 주민들이 많이사는 지역에서는 푸와스키의 날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리노이 주]]는 [[3월]]의 첫번째 [[월요일]]을 그 국경일로 정하였다.
[[분류:미국 독립 전쟁]]
[[분류:폴란드계 미국인]]
[[분류:전사한 사람]]
 
[[bg:Кажимеж Пуласки]]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