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폰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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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두 번의 결혼 ===
[[파일:Duchknt.jpg|thumb|left|180px|켄트 공작 부인과 빅토리아어릴 공주적의 빅토리아]]
그녀는 [[제2대 라이닝겐 후작 에미히 카를]]과 결혼하였으나, 그는 [[1814년]]에 사망하였고, 빅토리아는 [[1818년]]에 [[켄트스트라선 공작 에드워드]]와 재혼하게 된다. 둘 사이에서는 훗날 여왕이 되는 [[영국의 빅토리아|빅토리아]]가 태어난다. 그러나 빅토리아가 태어난 지 1년만에 에드워드는 사망해버리고,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지만, 자신의 딸이 [[윌리엄 4세]] 사후 여왕으로 즉위하는게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었으므로,<ref>[[윌리엄 4세]]는 6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며, 그의 아내인 [[작센마이닝겐의 아델레이드]]도 38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ref> 자신의 모국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로 돌아가지않고, 영국에 남아서, [[존 코로이]]와 함께 딸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매우 노력하였다. 이 결과, 딸 [[영국의 빅토리아|빅토리아]]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않았다.<ref>후에 켄트 공작 부인의 조카이자 여왕의 부군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가 이 둘을 화해시킨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