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식민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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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1675년]]에서 다음 해까지 계속되었다. 영국인은 인디언을 전투에 이끌어 내려고 했지만, 인디언이 이를 피해했기 때문에 번번히 좌절되었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당황케 하는 게릴라 전술을 이용했다. 벤자민 처치 대장은 우호적인 인디언의 협력을 구하는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필립 왕의 평지에도 인디언과 싸우는 법을 배우려고 했지만, 어느 인디언도 잠재적인 적이라고 생각되는 플리머스의 지도자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윈슬로 지사와 플리머스의 군사 지도자 윌리엄 브래드포드 소령(죽은 윌리엄 브래드포드 주지사의 아들)이 당황했고, 처치에게 영국인과 인디언 연합군을 만들 권한을 부여했다. 처치는 사코넷토과 동맹을 맺고 연합군으로 큰 싸움을 피하고 있던 필립 왕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1676년]] 7월에 처치의 부대는 수백 인디언을 큰 전투 없이 잡았지만, 필립 왕은 번번히 탈출했다. 처치는 영국 측에 전향한 인디언 포로를 사면시켜 주는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그 부대는 크게 증가하였다.<ref>Philbrick (2006) pp 311–323</ref> 필립 왕은 결국 포카셋 인디언에게 살해되었고, 전쟁은 곧 압도적인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다.<ref>Philbrick (2006) pp 331–337</ref>
 
이 전쟁에서 영국 성인 남성 인구의 8%가 죽은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대부분의 기준으로는 큰 숫자이다. 그러나 인디언에게 준 충격은 더욱 컸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도망갔으며, 노예로 타처에서에[[버뮤다]] 등 타처로 팔려나갔기 때문에, 뉴잉글랜드 인디언 인구는 60% 내지 80%가 감소했다.<ref>Philbrick (2006) pp 331–337</ref>
 
==== 이후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