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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설명&변형 ==
M1 카빈은 2차 대전 당시 일선전투부대外 병사들의 개인방어용화기를 보급시킬 목적으로 개발하였다.
M1 카빈은 2차 대전 당시 있던 [[M1 개런드]]나 [[M1A1 톰프슨 기관단총]]이 가진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소총이다.
무전병, 운전병, 보급계통과 같은 지원 임무를 맡은 인원들과 박격포병이나 공수부대원, 장교, 의무병처럼 전투부대이나 보병용 소총 혹은 기관단총/권총으로만
무장시키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이는 이들을 위한 작고 가벼운 자동 화기가 요구됨에 따라 작고, 가볍고, 휴대가 쉬우면서 소총같이 쓸 수 있는 자동화기에 대한
설계가 진행된다.
 
M1 개런드의 경우 강한 탄을 쓰고 반자동이여서 좋긴 했지만 길이가 너무 길고 반동이 너무 컸으며, 그로 인해서 작은 총이 필요한 공수부대나 총을 휴대하지만 평상시에 총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을 하는 병사(엔지니어, 타이프라이터, 의무병등등)에게는 M1 개런드가 너무 버거운 존재였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의 PDW(개인방어용화기)와 유사한 개념이다.
물론 리볼버나 M1911A1 콜트 같은 권총을 무장으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권총들의 경우 주무장으로서의 위력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전투원들에게 M1 톰프슨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M1 톰프슨의 경우 근접전에서 확실한 효과를 인정하긴 했지만 M1개런드나 그 당시 활동하던 M1903 스프링필드 소총과 다를바없이 무겁고 휴대하기 불편했으며, 장거리 전투시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게 입증이 되면서 무산되었다
 
그래서 미군은 새로운 총+탄약 개발에 착수를 하게 된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요구한다.
일단 이 총에 쓰인 탄약은 기존에 있던 .30-06 스프링필드 탄약(그당시 M1개런드에 쓰였던 탄약)의 탄자 지름은 동일하게 하되, 탄피의 길이를 줄이고 화약의 양을 줄여서 사거리가 기존 소총탄보다 짧고 화력도 약하게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대신 권총탄보다는 더 긴 사거리를 가지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일단 이 총은 정식 무장이 필요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 사격이 필요한 병사들이나 가벼운 무장이 필요했던 공수부대에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 총을 사용한 병사들의 직책을 보자면 무전병, 탱크/차량 승무원, 포병, 공병대, 공수부대등등 굉장히 많은 곳에서 이 M1 카빈을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주로 50 ~ 300야드에서 사용되면서 권총보다 정확하고 위력적일 것.
그리고 기존에 있도록 설계가 되었지만 사정상 제거된 자동 사격 방식도 나중에 개발된 M2 카빈에서 쓰였으며, 이 두 버전은 2차 대전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도 쓰였고, 그리고 특히 이 M1 카빈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 꽤나 쓸 만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2. 보병의 신형자동소총(개런드)보다 다루기 쉬우면서 가벼울 것.
 
3. 톰슨 기관단총보다 다루기 쉬우면서 가벼울 것.
 
4. 무게는 5파운드 정도욀 것.
 
5. 자동 사격이 가능해야하며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되면 좋음.
 
 
이 육군의 요구 사항들은 윈체스터社가 받게되며 윈체스터에서 탄약 개발이 진행된다.
1938년, 27구경보다는 크면서 유효사거리는 300야드정도고 총열을 완전히 수평으로 놓고 쐈을 때 300야드에서 낙차(bullet drop)은 18인치 이내인 자동화기용 탄약이란
조건에 맞춰서 윈체스터사의 수석 기술자이자 공장 책임자였던 에드윈 퍽슬리(Edwin Pugsley)는 100그래인 정도의 30구경 총알을 총구속도 2,000 ft/sec정도로 날려보내는
탄약을 개발한다. 탄약 개발 당시 1906년에 만들어봤던 32 Winchester Self-Loading탄 (32 SL이라불리던)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나온 30 Self-Loading 탄약은 미육군의 새로운 자동화기용 탄약으로 채택된다.
이 30 Self-Loading 탄약은 기존의 소총탄을 줄이기 보다는 권총탄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탄약의 형상은 일반적인 권총탄을 확대시킨 형태이고
기존에 위력이 약한 권총탄 (M1A1톰슨, M3/M3A1)을 대채하는 용도였다.
 
 
한편, 금주법 시대인 1921년, 밀주제조 및 유통업자로 암약중 밀조 현장을 급습한 보안관 한명을 쏘아죽였던 David "Carbine" Williams란 1급 살인범이
교수형에 처해질뻔하나 혐의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8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던중 종이와 연필을 구해 밤에 잠안자고 총기를 설계했고 풀려나와 그의 설계를
윈체스터에 제출한다.
 
 
곧 그는 윈체스터에 영입됐고 죠나단 브라우닝의 설계에 자신이 개발한 단복좌 가스 작동식 구조(short-stroke gas operation)을 적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자동소총 M2를 1940년 미해병대의 자동소총 선정사업에 뛰어들지만, 이 M2는 해병대가 요구했던 모래투성이의 환경에서 잘 작동하지 못했고
해병대는 이걸 거부한다.
이 일 이후, M2는 다시 설계되며 틸팅 볼트 대신에 개런드 소총에서 사용된 것과 비슷한 회전 노리쇠(rotating bolt)방식으로 변경된다.
 
 
포기할수 없었던 윈체스터는 크기를 더 작게하고 이에 따라 Edwin Pugsley의 지휘하에 William Roemer와 Fred Humeston외 3명의 기술자들이 13일동안
M2 의 설계를 그들이 이미 만든 30 SL 탄에 맞춘다.
 
 
이 설계는 육군을 꽤 만족시켰고 육군은 1941년 8월까지 테스트하게되며 윈체스터에서도 자신들의 설계에 좀 더 손을 대게 되죠.
이 때 반자동-완전자동 선택이 제거 되고 반자동만 가능하게 된다. 데이비드 윌리엄스도 이 때 다시 참여했고 이렇게 다듬어진 설계는 1941년 9월에
미육군에 의해 높은 점수를 받게되어 1941년 10월 21일 미육군에 의해 M1 카빈이란 제식명을 받게 된다.
 
 
M1 카빈에 쓰이는 .30 Carbine 탄은 기존의 소총탄을 줄이기 보다는 권총탄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탄약의 형상은 일반적인 권총탄을 확대시킨 형태이고
기존에 위력이 약한 기관단총(M1A1톰슨, M3/M3A1)을 대채했다.
 
 
단점으로는 기존에 생각했던 대로 근접전이나 약간 긴 전투에서는 효과적인 성능을 보였지만, 그 이상으로는 권총탄이나 소총탄을 메워줄 만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총 자체 내에 있는 스프링이 추운 지방에서 잘 고장이 나서 사격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다고 했다. 또 기존에 있던 소총들과 달리 정확성이 너무 낮아서 불평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고 한다.
 
[[파일:M1A1 Carabine.jpg|thumb|250px|M1A1 카빈]]
* M3 카빈
** M2에 암시 조준경을 장착한 변형으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특수한 용도로 쓰였으며 총 3천 정이 생산되었다.
 
<문제중년 http://glob.egloos.com 제공>
 
== M1 개런드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