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5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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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차례의 세계 대전 ===
스웨덴은 중립국으로서 두 차례에 세계 대전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스웨덴]]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나치 독일]]에 [[철|철 광석]]을 팔고, [[베저위붕 작전|덴마크와 노르웨이 점령]]을 묵인하였다. [[노르웨이]]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할 때, 그의 조카였던 [[스웨덴 공주 메르타|스웨덴의 마르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입국하였는 데, 대부분의 [[스웨덴인]]들은 그녀의 입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알게된 [[루즈벨트]]는 [[스웨덴의 마르타]]에게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이 미국에서 머물 것을 권유했고, 마르타가 이를 수락하여 그녀는 [[미국]]으로 망명해버린다. 이로 인하여, 전후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스웨덴은 중립국으로서 두 차례에 세계 대전에 참가하지 않았다.[[스웨덴]]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에 [[철|철광석]]을 팔고, [[덴마크]]와 [[노르웨이]] 정령을 묵인하였다. 당시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호콘 7세]]는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올라프 5세|올라프]]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해서 망명 정부를 세워 독일에 저항했다. 올라프의 부인은 스웨덴의 매르타 공주로 구스타프5세의 동생인 칼 왕자의 딸이었다. 이 때문에 매르타는 아이들과 함께 고향인 스웨덴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스웨덴 정부는 공주의 입국을 거부했다.<ref> 아마도 매르타와 아이들이 남편을 따라 가지 못한것은 영국 정부가 불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 왕가 역시 영국에서 망명정부를 세웠지만, 국왕과 후계자인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영국입국을 허락받지 못했다.매르타는 친분이 있던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으며, 전쟁이 끝날때까지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이때 매르타는 미국에서 노르웨이를 돕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기에 전후 노르웨이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ref> 스웨덴은 이때까지도 독일의 군사력보다 약했기에 의회는 이런 선택을 했지만, 이는 스웨덴 국민들에게 큰 반발을 일으키는 일중 하나였다.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