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 (황해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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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 '성불사 응진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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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 깊은 밤 그윽한 풍경소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가곡 〈[[성불사의 밤]]〉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 성불사 응진전 ==
성불사 응진전(成佛寺應眞殿)은 성불사의 대표적 건물이다. 경북 영주 부석사, 황해북도 연탄 심원사 보광전, 평안북도 박천 심원사 보광전 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하나로 고려시대를 대표한다. 1327년(고려 충숙왕 14년)에 다시 지은 응진전은 내부는 고려양식이지만 조선시대에 수리를 거쳐 고려와 조선양식이 모두 남아 있다. 따라서 응진전은 극락전과 함께 고려 후기의 건물이고, 그 밖의 건물들은 조선시대에 세웠다.
 
앞면이 20m나 되는 긴 건물이면서도 균형이 잘 짜여져 있을 뿐 아니라 줄지어선 기둥들과 처마밑장식, 아름다운 두공의 짜임으로 전체 건물이 부드러우면서도 웅건하다. 건물은 앞면 7칸(22.75m), 옆면 3칸(6.7m)이며 기둥은 배부르고 3포 두공을 얹어 남북으로 긴 배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두공은 직선적이고 간결한 소혀 모양의 산미와 첨차가 정밀하게 맞물려 가볍게 도리를 떠받들게 하였으며 제공과 첨차, 첨차와 첨차, 첨차와 장여 사이에는 접시받침이 있는 소로를 받쳐 건물을 단정하고도 아름답게 하였다. 또한 장여 윗면에 오목하게 홈을 파고 둥근도리를 맞추어 놓았으며, 대공좌우에는 보기좋게 휜 활개를 받쳐놓았고 박공은 길게 뽑고 풍판을 달았으며, 천장은 통천장이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고려건축의 특징으로서, 처음 지은 이래 여러 차례 개축과 증수가 있었음에도 응진전의 고려적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다.응진전은 현존하는 한국의 옛 건물 가운데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서 뛰어난 건축술과 높은 예술적 기교로 한국 건축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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