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유수포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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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300px|섬네일|왼쪽이 유스포프 대공, 오른쪽은 부인 이리나 대공비 '''펠릭스 유스포프 대공'''(러시아어:Фéликс Фé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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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생애==
[[러시아 제국]] [[페트로그라드]]의 [[모이카 궁전]]에서 태어난 유스포프는 유스포프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스포프 가문은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의 어머니인 제나이다 유스포바는 첫 아들을 낳은 이 후에 둘째는 딸을 원했지만 아들이 태어나자 실망했으나 아이를 여장시킴으로서 아쉬움을 달랬다.
훗날 몸이 자라서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때도 잠시 여장을 하고 다니는 때가 있었으며 당시 러시아를 방문했던 [[에드워드 7세]]가 스쳐가는 그를 보고 청혼마저 하려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는 근거가 희박하다.
 
[[황후|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와 [[황제|니콜라이 2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베리아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1916년]] [[12월 29일]]날 다른 귀족들과 공모해 죽인 후 [[네바 강]]에 빠뜨린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당시 그는 청산가리를 탄 와인과 총 몇자루로 그를 공격했지만 그는 소리만 크게 질러댈 뿐 결코 죽지않아 끝에 납이 달린 지팡이로 내려친 후 공모자들과 함께 그를 자루에 넣어 강에 빠트렸다고 혁명 후 망명지에서 회고했으며 그것이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1917년]] [[3월]], 즉 [[2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대부분의 러시아 귀족들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첫 망명길은 [[영국]] [[런던]]이었으나 [[로마노프 왕조]]와 귀족가문들이 많이 머무르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