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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새벽 일본 수군을 공격했다. [[이순신]]은 [[학익진]](鶴翼陣)을 펴 먼저 공격하고, 경상우수사 [[원균]]은 그 뒤를 따랐으며,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포구 바깥에 예비대로 대기하였다.
 
조선 수군은 여러 번 왜선을 포구 밖으로 유인하려 하였으나 쉽게 응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은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번갈아 포구에 침입하여 왜선을 공격하였다. 이에 왜군이 맞서 싸우자 이억기의 함대도 참가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하루 동안 계속된 싸움에서 왜군 250명이 사살되고 나머지 왜병들은 뭍으로 도망쳤다. 모든 화력을 왜군 기함인 층각선에 집중. 지리적으로는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작전 지휘의 승리승리였다.<ref>[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na_12506021_004&grp=&aid=&sid=12166388&pos=0 원균과 이순신이 한산도·당포에서 승전한 일에 대한 기록], 《선조실록》, 27권 1592년 6월 21일</ref>
 
[[한산도]]에서 대패한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이들과 함께 한산도에서 조선 수군과 싸워야 했으나, 와키자카는 이들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출병했다가 자신도 패하고, 이들도 패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