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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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젊은 동생 [[관구수]](毌丘秀)와 손자 [[관구중]](毌丘重)은 [[오 (삼국)|오나라]]로 도망갔다.
 
==성명==
관구검(毌丘儉)의 성은 복성으로 관구(毌丘)이다. 이 성은 위나라에 관구(毌丘)라는 지역명에서 창성되었는데, 본래 중국에는 없었고 삼국시대 등장한다. 따라서 관구검(毌丘儉)의 출신이 한족인지, 다른 이민족인지 분명치 않은데, 그가 데리고 있던 부족 갈족, 오환, 동호와 관련성이 제기하는 주장도 있다.
 
관구검이 무구검이 된 것은 그의 손자 관구오가 관자와 비슷한 한자로 비문에 표기하였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발음은 지역마다 다르고, 한문 사용도 차이가 있었는데 현재 발음으로 읽다보니 무구검 설이 나왔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순양궁(純陽宮)에 있는 '무구씨조상비'(毋丘氏造像碑)는 관구검의 손자 무구오'(毋丘奧)가 만들었다. 관(毌)자와 무(毋)자는 모양이 거의 동일한 한자이다.
 
== 친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