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번째 줄:
 
== 역사 ==
[[춘추 시대]] 당시 [[계 (춘추)|계나라]](薊)에서 건설하였으며, [[연 (춘추 전국)|연나라]](燕)가 계나라를 점령하면서 연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기원전 222년]]에 [[진 시황제]](秦始皇帝)가 연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광양군(廣陽郡)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전한]](前漢) 당시에 '''범양'''(范陽)으로 개명한 뒤 어양군(漁陽郡)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후한]](後漢) 시대에 [[유주]](幽州)의 주도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국 본토]]의 북쪽 경계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잦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후한 말기에는 [[황건적]](黃巾賊)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후한 말기에는 유주자사(幽州刺史)인 [[유언 (후한)|유언]](劉焉)이 다스렸으며, 유언이 익주목(益州牧)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새로운 유주목(幽州牧)으로 임명된 [[유우 (후한)|유우]](劉虞)가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유우와 대립하여 그를 죽인 [[공손찬]](公孫瓚)에게 점령되었으며, 그 뒤 공손찬의 세력을 멸망시킨 [[원소 (후한)|원소]](袁紹)에 의해 함락되었다. 원소의 세력이 [[조조]](曹操)에게 멸망한 이후에는 조조의 세력에 속하였으며, 이후 [[위 (삼국)|조위]](曹魏) 건국[[서진]](西晉) 이후에도시대에도 유주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당나라]]와 [[후진 (오대)|후진]](後晉) 시대에는 영주(营州)와 대주(代州)에서 군사적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安祿山)이 근거지로 삼았다.
그리고 진(晋)왕조가 이곳에 지방 현을 설립했다.
 
그 이후로 이름이 중도대흥부(금나라), 대도(원나라), 북경(명나라·청나라)으로 바뀌어도, 연경으로 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