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로베르 카벨리에 드 라 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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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로베르 카블리에 드 라 살'''(Rene-Robert Cavelier de La Salle, [[1643년]] [[11월 21일]] ~ [[1687년]] [[3월 19일]])은 [[프랑스]]의 탐험가이다.
== 초기 생애 ==
르네-로베르 카블리에는 [[루앙]]에서 출생하여 자기 가족의 사유지의 이름을 따 라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몬트리올]] 근처에 약간의 땅을 회득하여 번영하는 [[모피]] [[상인]]이 되었다.
== 첫 탐험 ==
[[1669년]]부터 [[1673년]] 라살은 북아메리카의 막대한 내부를 돌아다녔다.
[[1674년]] 프랑스로 돌아갔고, [[루이 14세]]는 현재 [[온타리오 주]] [[킹스턴 (온타리오 주)|킹스턴]]의 대지인 프론테나크 [[요새]](Fort Frontenac)를 포함한 땅을 라살에게 주었다.
[[1679년]] 캐나다로 돌아가 프랑스의 [[오대호]] 지방을 지배하는 여행에 진출하였다. [[1680년]] 그는 현재의 [[일리노이]] 지역에 유럽인들의 첫 정착지를 설립하였다. [[일리노이 강]]에 서있고, 현재의 페오리아(Peoria) 근처에 크레브쿠외르 요새(Fort Crevecouer)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요새를 지은 후, 많은 공급을 위해 캐나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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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의 후반에 일리노이 강에 걸쳐있는 [[절벽]]에 생루이 요새(Fort Saint Louis)를 건설하였다. 그 절벽은 지금의 굶주린 바위 국립 공원(Starved Rock State Park)이다. [[1683년]] 후반에 식민지를 위한 공급원과 정착자들을 데리러 프랑스로 떠났다.
[[1684년]] 라살은 프랑스에서 300명 이상의 식민자들을 태운 4척의 배를 거느리고 멕시코 만으로 항해하였으나 이 진출은 라살이 실수로 시간이 지나도록 항해를 한 이유로 미시시피 강에 도달하지 못했다. [[1685년]] 그는 강의 서부 유역에 식민지를 세웠는데 이 대지는 현재 [[텍사스 주]] 코퍼스 크리스티 지역에서 동부로 약 80마일 떨어져있는 마타고르다 만(Matagorda Bay) 근처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새 정착지들을 위협하였고, 많은 식민자들이 질병으로 사망하였고 [[1687년]] 식민지는 절망적으로 도움이 필요하였다. 라살과 그의 선원들 몇명은 미시시피 강을 향해 행진하였으나 강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 자객들이 라살의 조카를 죽였으며 자신도 [[3월 19일]]에 살해당하였다.
[[분류:1643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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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René Robert Cavelier de La Salle]]
[[tl:René-Robert Cavelier, Sieur de La Salle]]
[[uk:Рене Роберт Кавельє де ла Сал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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