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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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티오피아의 역사}}
 
[[기원전]] [[1000년]] ,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지혜 겨루기에서 진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메넬리크 1세]]가 북에티오피아로 이주하여 [[황제]]가 된 것이 에티오피아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에는 발원한 도시의 이름을 따 [[악숨 제국]]으로 불렸다. 이후, [[에티오피아 제국]]이 되었으며 [[1974년]] [[쿠데타|공산 쿠데타]]로 제정(帝政)이군주제가 붕괴될폐지될 때까지 [[입헌 군주제]](입헌 군주제는 [[20세기]] 초에까지 시작)였다존재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19세기 중반에는19세기에는 [[마호메트 알리이집트]]가 통치하던, [[이집트이탈리아]]의 침략을침략까지 막아막아내어 내었으며독립국으로써의 19세기위상을 말에는전 세세계에 알렸다. [[이탈리아1931년]]에는 왕국|백인[[입헌 군주제]] 침략도국가가 이겨되었다. 그러나 나라이다([[아도와1936년]], 전투이탈리아의 2차 공격에는 패배하여 황제가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1941년]]), [[영국]]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내었으며 외국으로 망명 간 황제는 복위하여, 에티오피아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대한민국]]에 병력을 지원하여 1,000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육상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74년]]에는 [[멩기스투]] 소령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쿠데타로 황제가 폐위되고, 제정도 폐지되었다.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선포하였고, 군부의 공포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1936년부터 1941년까지는 [[파시즘]]의 불법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유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1941년]]까지 [[영국]]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해야만 했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멩기스투는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전]]에 패배한 멩기스투는 [[1991년]]에 대통령 직을 사임하였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는 민주화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영토였던 [[에리트레아]]는 [[1993년]]에 독립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피폐되어버린 경제를 다시 되살려야 하는 등 많은 일이 남아 있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에리트레아는 [[1993년]] [[5월 24일]]에 독립을 맞이함). [[1951년]]부터 [[1953년]]까지는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에 6,000여 명을 파병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1970년]]대에 연이어 발생한 기근으로 [[1974년]] [[9월 12일]]에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폐위당하고 [[1975년]] 암살당하면서 [[솔로몬 왕조]]도 끝을 맺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군부의 [[공산주의|공산]] 쿠데타에 의한 것으로,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공산주의|공산 국가]]로 선포하였고 [[1977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대통령이 되면서 군부의 공포 [[독재 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게 되었으며,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1991년]] 멩기스투가 실각하면서 [[1992년]]에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파탄이 난 지 오래인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이 있다.
 
==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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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국가 원수는 [[대통령]]으로, [[대통령제]]는 [[1987년]]에 도입되었다. 국군 통수권은 총리가 행사한다. 의회 제도는 [[양원제]]이며, [[1995년]]부터 연방제를 시행했다.
이 나라의 국가 원수는 대통령으로, 1987년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권자이자 국군 통수권자는 내각이다. 엄연히 [[의원 내각제]] 국가라는 것이다. 내각제는 1942년에 도입되었다. 이 나라의 의회 제도는 양원제이며, 1995년부터 연방제 국가가 되었다.
 
== 군사 ==
{{본문|에티오피아의 군사}}
 
방위는 국방부(Ethiopian National Defense Force, 약칭 ENDF)에서 책임을 지며 육군(Ground육군과 Forces)과공군과 공군(Air Force)과 헌병(Military Police, MP)이헌병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에티오피아 해군|해군]](Navy[[1956년]]~[[1991년]])도 있었으나존재하였으나 [[에리트레아]]가 독립한 이후, 해군이해군 전력이 없다. 군대 규모는 총 합쳐서병력은 50만 명이다. 병역의 의무가 있으며명이며, 군통수권자는[[징병제]]를 채택하고 총리이다있다.
 
== 주민 ==
암하라, 오로모, 티그라이가 3대 종족을 구성하지만 전체적인 세부 부족 및 언어는 대략 80개에 달한다. 한편 가장 많은 인구와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오로모족([[오로모인]])으로 이들은 수도 [[아디스 아바바]]를 중심으로 한 중부 및 중서부 /, 중남부 지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암하라족이며 티그라이족이 그 뒤를 잇는데 현재 집권 세력은 티그라이족 출신이다. [[암하라족]]은 70년대 공산정권이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2000년간 이 나라의 [[솔로몬 왕조|왕가]]를 구성하고 있었다.
 
== 인구 ==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이집트]]에 이어 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1995~2000년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2.92%,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99.96명([[1999년]] 기준)이다.
 
== 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