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넨베르크 전투 (141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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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그 기간 동안 양군은 최대한 전력을 끌여들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헝가리 국왕 [[신성로마제국의 지그문트|지그몬드]]에게 황금을 보냈다. 지그몬드는 곧 이 연합군을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한 연합군은 보헤미아의 [[얀 지슈카]]를 끌여들였다. 1410년 7월 9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은 프로이센으로 진군하며 엄청난 파괴와 약탈을 자행했다.
 
그때 울리히 기사단장은 적군이 Dobrzyn쪽으로 접근하리라 파악하고 있었고, 리투아니아군과 폴란드군이 다른 방향에서 들어올 것이라고 대비해 군대를 분리시켜둔 상태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목표는 기사단령의 수도인 [[마리엔부르크]]였던 것이다. 기사단은 황급히 최종 방어선인 [[드레빈츠 강]] 유역 방어선을 강화했다. 연합군은 드레벤츠 강을 지나기 위해 좀 더 동쪽으로 우회했고, 기사단은 연합군과 평행하게 강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다 강이 급격히 북쪽으로 꺾어지는 지점에서 기사단은 강을 건너 방어적인 대형을 취했다. 튜튼 기사단은 그룬발트 마을 근처에, 연합군은 탄넨베르크 마을에 진을 쳤다. 기사단은 습지로 둘러싸인 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연합군은 5마일을 이동했고, 숲에 병력을 매복시킬 수 있는 지점을 손에 넣었다.<ref name="베이전트 338">[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0301&eid=4+C/uUAoqTc1seiIoMVy/xajlOH4oR9u&qb=7YOE64So67Kg66W07YGsIOyghO2IrCgxNDEw64WEKQ==&enc=utf8&pid=fjopMdoi5TGssti47lwsss--067498&sid=Saoj4u37qUkAAAFHd7Y ³×À̹ö Áö½ÄiN :: Áö½Ä°ú ³»°¡ ÇÔ²² Ä¿°¡´Â °÷<!-- 봇이 붙인 제목 -->]</ref>
 
== 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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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짜 문제는 리투아니아 군을 추격하던 기사단은 갑자기 숲에서 폴란드군이 뛰쳐나오고 퇴각하던 리투아니아군이 방향을 돌려 응전하자 크게 기겁했다. 곧 리투아니아 기병의 공격이 개시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울리히는 예비대를 투입해 지친 군대와 교대했고, 야기에우오 역시 최후의 예비대까지 투입했다. 울리히는 왕을 노리고 전투에 나섰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군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추격대를 섬멸한 리투아니아 기병들이 측면의 약점을 파고들자 기사단이 밀리기 시작했다. 곧 기사단의 전열이 과도하게 밀집된 상태에서 폴란드 기병들이 기사단의 군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기사단의 전열이 와해되었다.<ref name="베이전트 338" />
 
==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