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돈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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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주돈이'''(周敦頤, [[1017년]]~[[1073년]]) 또는 '''주염계'''(周濂溪)는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이다.<ref name="글로벌-주돈이">[[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동양의 사상/중국의 사상/송·명의 사상#주돈이|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송·명의 사상 > 주돈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 시(諡)는 원공(元公)이다. 도주 영도(道州 營道-현재의 [[허난 성]]에 속함) 출신이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 생애 ==
[[파일:Zhou Dunyi.JPG|thumb|left|주돈이 소상]]
본명은 돈실(敦實)이라고 하였으나 그 때의 황제 [[북송 영종|영종]]과 동명이었으므로 고쳐서 돈이라고 하였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부친인 보성(輔成)은 하주(賀州) 계령현(桂嶺縣)(현재의 黃西省에 속함)의 지사(知事)를 하고 있었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모친은 정씨(鄭氏)이다.<ref
그가 남안(南安)에 있을 때에 정향(程珦)이라는 사람이 같은 관리로서 부임했다. 정향은 염계의 인품과 학문에 경의를 품고 친하게 교제함과 동시에 자기의 두 아들을 염계에게 나아가 배우게 하였다. 그것이 [[정호|정명도]], [[정이|정이천]]의 두 형제였다. 송대의 형이상적 사유는 [[주희|주자]]에 의하여 열려졌다고도 한다. 그 이전에 싹이 엿보였다고 해도 저 유명한 염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나 《통서(通書)》에 보이는 깊은 사색은 후의 2정자(二程子), [[장횡거]](張橫渠)로 계속하는 송대 도학(道學)의 단서였다. 《주자전서(周子全書)》 7권은 순전히 염계의 저술을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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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
* [[주희]]
== 주석 ==
<references/>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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