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돈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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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파일:Zhou Dunyi.JPG|thumb|left|주돈이 소상]]
본명은 돈실(敦實)이라고 하였으나 그 때의 황제 [[북송]] [[북송 영종|영종]]과 동명이었으므로 고쳐서 돈이라고 하였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부친인 보성(輔成)은 하주(賀州) 계령현(桂嶺縣)(현재의 黃西省에 속함)의 지사(知事)를 하고 있었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모친은 정씨(鄭氏)이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주돈이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모친의 일가인 용도각(龍圖閣) 대학사(大學士) 정향(鄭向)의 집에서 양육되었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북송]] [[북송 인종|인종]](재위 1022-1063) 경우(景祐) 3년([[1036년]])에 그는 젊은
그가 [[남안]](南安)에 있을 때에 정향(程珦)이라는 사람이 같은 관리로서 부임했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정향은 염계의 인품과 학문에 경의를 품고 친하게 교제함과 동시에 자기의 두 아들을 염계에게 나아가 배우게 하였다.<ref
송대의 형이상(形而上)적 사유는 [[주희]]에 의하여 만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이상적 사유의 단초는 주돈이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돈이의 저술인 《[[태극도설]](太極圖說)》이나 《[[통서]](通書)》에 보이는 깊은 사색은 자신의 제자인 [[정명도]]{{.cw}}[[정이천]]의 [[2정자]](二程子)와 그후의 [[장횡거]](張橫渠)로 계속 이어진 송나라 시대 [[도학]](道學)의 방향을 설정하는 시초가 되었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주자전서]](周子全書)》 7권은 순전히 주돈이의 저술을 모은 것이다.<ref name="글로벌-주돈이"/>
== 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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