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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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45년 6월 30일 일본 아키타현 하나오까에서는 중국인 강제 노동자 1,000여 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체포 진압 과정에서 418명이 살해되었다.
 
== 기타 ==
한편 한국의 작가 겸 소설가 [[김완섭]]은 징용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여 한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2000년]]대 중반, [[일제 식민지]] 당시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인 침략만을 당했는가 하는 비판을 제기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3년]] [[1월]]에는 [[일본]] 쇼쿤과의 인터뷰 내용이 국내에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다. [[김완섭]]은 한일간의 갈등을 [[한국]] 측에서 의도적으로 조장한다는 색다른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일간의 역사갈등의 원인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왜곡이라고 규정한다.'<ref name="rod2">노 다니엘,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190쪽</ref>
'''한국인들에게 있는 반일감정은 한국 정부의 의도적인 역사왜곡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국제사회의 일반적 견해이기도 하다'''라고 규정<ref name="rod2"/>하였다.
 
그는 또한 [[일제 강점기]] 당시 일방적인 강제 징용만 있었는가 하는 주장을 학계에 제기하여 [[한국]] 국사학계로부터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2003년]] [[1월]] [[일본]] 잡지 《쇼군》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같은 주장을 펼쳤다.
 
{{인용문|한일합방 시대에 일본군에서의 조선 출신 지원병의 응모상황에 대한 자료를 봅시다. (이하 생략) 실로 30만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쇄도한 것입니다. '일본 군인' 한 사람을 뽑는 데, '조선인' 50명 이 지원한 것입니다.<ref name="rod1">노 다니엘, 《우경화하는 신의 나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191쪽</ref> 이러한 높은 경쟁률은 당시 사법시험이나 현재의 유명대학의 경쟁률에 비하여도 상당히 높은 것입니다.<br /><br />(《쇼큔》[[2003년]] [[1월]]과의 인터뷰 중<ref name="rod1"/>}}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