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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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통감 ==
 
{{본문|자치통감}}
<[[자치통감]]>은 기년체 전성시대였던 시기 과감하게 경서 춘추의 편년체를 기초로 제작된 역사서이다. 춘추이후부터 송나라 이전의 5대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한 이 책은 황제로부터 편의를 받을 정도였다. 당시의 저명 사학자 유?(劉?) 및 한대사의 저명한 연구자 유?(劉?), 제자 [[범조우]](范祖禹)도 맡은 방면의 역사기록을 모으는 데 조력하였다고 한다. </ref>등의 도움을 얻어 당시 모을 수 있었던 사료를 망라한 자료집을 만들었고, 이를 비롯한 다른 방대한 양을 사마광이 산책하여 필삭하였다. 또 아들 사마강도 작업에 참여하였다. 책 이름처럼 황제의 치세도구를 위해 만든 것이 주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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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의 아들 의중이 '선친이 편수국에서 하신 일은 사적을 유별로 모아 장편을 만들었을 뿐 필삭에 있어서는 하나하나를 모두 군실이 하였다' (통감문의)고 한데서 알 수 있다. 그리고 통감의 초고가 자그만치 집 두 채에 가득했는데 황정견이 수백권을 열람해 보았으나 초서로 쓴 것은 단 한 자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선암집)</ref>
 
== 일화 ==
* 사마광이 어렸을 때 그의 친구들과 함께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화원 안에는 가산(假山)<ref>석가산(石假山)이라고도 하며 이는 정원에 [[강소성]](江蘇省)에서 나는 [[태호석]](太湖石) 덩어리를 쌓아 만든 작은 산을 말한다.</ref>이 있었으며 가산 아래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었고 그 물항아리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과 가산 위에 놀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조심하지 않아 큰 물항아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 모두 당황하였으며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르신을 찾으러 뛰어갔다. 사마광은 당황해 하지 않고 돌 하나를 들어 항아리를 맞추어 때려 부셨다. 항아리 속 물은 흘러나왔고 물항아리에 빠진 친구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ref>{{서적 인용|출판사=[[인민교육출판사 소학어문실]]|제목=제2어문책|id=ISBN 7-107-13869-3|쪽=46~47}}(대한민국 기준으로 1학년 2학기 초등학교 교과서). 한국어로 옮김.</ref>
* 사마광은 또한 신동으로 알려져 있어 7살때 좌씨춘추의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집의 사람들에게 들었던 내용을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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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중엄]]
* [[구양수]]
 
== 일화 ==
* 사마광이 어렸을 때 그의 친구들과 함께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화원 안에는 가산(假山)<ref>석가산(石假山)이라고도 하며 이는 정원에 [[강소성]](江蘇省)에서 나는 [[태호석]](太湖石) 덩어리를 쌓아 만든 작은 산을 말한다.</ref>이 있었으며 가산 아래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었고 그 물항아리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과 가산 위에 놀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조심하지 않아 큰 물항아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 모두 당황하였으며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르신을 찾으러 뛰어갔다. 사마광은 당황해 하지 않고 돌 하나를 들어 항아리를 맞추어 때려 부셨다. 항아리 속 물은 흘러나왔고 물항아리에 빠진 친구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ref>{{서적 인용|출판사=[[인민교육출판사 소학어문실]]|제목=제2어문책|id=ISBN 7-107-13869-3|쪽=46~47}}(대한민국 기준으로 1학년 2학기 초등학교 교과서). 한국어로 옮김.</ref>
* 사마광은 또한 신동으로 알려져 있어 7살때 좌씨춘추의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집의 사람들에게 들었던 내용을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