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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이후 그는 조용히 지냈다. <ref name="강준만"/> 그의 생활은 대부분 조부모에게 문안 인사하러 찾아오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ref name="한영우111"/> 그러나 일경의 심한 감시를 받았고, 안국동 집밖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ref>구국의 가시밭길(윤보선, 한국정경사, 1967년) 40페이지</ref> [[조선총독부]]로부터 요시찰인물로 분류된 그는 [[일본]][[경찰]]이 찾아와 그의 동향을 살펴보고 질문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한시간, 두시간, [[일본]][[경찰]]이 자리를 뜰때까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일본]]인형사는 그를 정신이상자 취급을 하였다.
한동안 몇몇 신뢰 가능한 지인들을 통해 [[이승만]]의 은신처로 방문, [[이승만]]을 간간히 만나곤 했다 한다.<ref>구국의 가시밭길(윤보선, 한국정경사, 1967년) 47페이지</ref> [[1937년]] 아내 [[여흥 민씨]]와 사별하였다. 이후 윤보선은 10년 이상 재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활했다.
 
[[1938년]]부터 그는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에 칼럼, 기고문 발표 등으로 소일하였다.
 
==== 태평양 전쟁, 은둔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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